‘내 마음의 양’ 문상직, 그림 제공 포털아트
김수환 추기경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고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습니다. 아직 의식이 남아 있을 때 자신을 돌보아준 의료진과 교구청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기는 마지막 말은 생애를 반영하고 또한 상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기경이 남긴 마지막 감사의 말 한마디에는 모든 것이 압축되고 또한 깃들어 있습니다.
고마움은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에 대해 흐뭇해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을 인사로 표시할 때 우리는 감사하다는 말을 합니다. 고마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감사하고 싶어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러니 고마워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의 뿌리는 하나입니다.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마음은 부정적인 기운을 거느리지 않습니다. 절망 비관 증오 미움의 감정이 터럭만큼이라도 남아 있으면 고마워하고 감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완전한 빛의 영역에 머물 때 비로소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습니다. 그래서 왼쪽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오른쪽 뺨도 내밀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고마워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살았습니다. 남보다 잘살고, 남보다 앞서가고, 남보다 높아지기 위해 본성을 외면하니 비좁아질 대로 비좁아진 마음에 고마움과 감사함이 깃들 여지가 없습니다. 지구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감사함과 고마움의 결정체입니다. 남과 나를 비교해서 불행하고 절망스럽다고 말하지만 지금 이곳에 살아 숨 쉬는 나는 항상 최선이고 항상 최상입니다. 그것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면 만사에 고마워하고 감사할 일밖에 없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에게 고마워하고 감사하세요. 그러면 미움 받는다고 느끼는 못난 나의 마음이 더 먼저 보입니다. 누군가 나를 차별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에게 고마워하고 감사하세요. 그러면 차별당한다고 느끼는 주눅 든 나의 마음이 더 먼저 보입니다. 그렇게 세상만사에 대해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나와 남을 차별하는 마음이 절로 스러집니다.
추기경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고마움이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근본심에서 자라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헐뜯고 비난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에 고마움과 감사함의 결실이 주렁주렁 맺혔으면 좋겠습니다. 겸손하고 소탈하고 스스로 의로웠던 그분의 가르침에 항상 그분의 마음으로 화답하는 자세를 배워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 박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