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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차일피일病

입력 | 2009-03-02 03:00:00


모처럼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는다. 책을 펴는 순간 친구한테 받은 e메일에 답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를 켜서 답장을 보낸 뒤 다시 책을 잡는 순간 책상 위에 온갖 것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게 몹시 거슬린다. 책상을 정리하는 김에 방 안까지 깨끗이 청소한다. 몸을 움직였더니 땀이 나고 목이 마르다. 물을 마셨더니 이젠 화장실에 가고 싶다. 어느새 시간이 한참 지났다. 에라, 모르겠다, 내일 하자며 침대에 눕는다. 이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다보스포럼에 의해 2009년 차세대 리더로 선정되기도 한 KAIST 정재승 교수는 동아일보가 격주로 발행하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8호(3월 1일자)에서 이처럼 중요한 일을 번번이 미루는 ‘차일피일병(病)’을 현대인의 사회적 장애라고 지적했다. 캐나다 윈저대의 심리학 교수인 퓨시아 시로이스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가 일을 미루는 버릇으로 재정적 손실을 입었고, 건강상태도 좋지 않았으며 제때 일을 처리하는 사람보다 스트레스도 더 많았다고 한다.

▷멀리 예를 들 것도 없다. 우리 주위에도 세금이나 아파트관리비를 나중에 내겠다고 미루다가 기한을 넘겨 가산금을 물어본 사람이 적지 않다. 새해에 금연이나 다이어트 결심을 하고도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는 건 다반사고, 학생들이 과제물 제출을 미루다가 수행평가 점수를 감점당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돈이 없어도 집부터 사고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그 차액으로 대출금을 갚겠다는 생각이 글로벌 경제위기를 부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이 됐다.

▷‘차일피일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워 마감시간 안에 끝내는 버릇을 들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일하는 손이 빠르기로는 기자들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데 이는 평소 마감시간에 맞추는 훈련을 해왔기 때문이다. “기자가 하루에 할 일을 공무원은 일주일에 하고, 교수는 한 달에 한다”는 말도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인 스티븐 코비 박사도 성공하려면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하라고 충고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고 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