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배달하러 갑니다” 지난달 27일 경기 포천시 신읍동 ‘포천 나눔의 집 행복도시락’에서 일하는 황인혁 씨가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배달할 도시락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포천=전영한 기자
[3] 자립 돕습니다…행복도시락 배달원 ‘제2인생’
“어렵지만 밝은 이웃보며 삶의 의미 되찾아”
취약계층 22명 취업… 지역사회도 팔걷어
지난달 27일 경기 포천시 신읍동 ‘포천 나눔의 집 행복도시락(포천행복도시락센터)’. 올해 63세의 황인혁 씨가 조기구이와 쇠고기볶음, 오이생채 등의 반찬이 들어 있는 도시락을 승합차에 싣고 있었다. 한부모 가정과 홀몸노인 등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배달할 도시락이었다.
황 씨가 근무하고 있는 포천센터는 SK그룹의 행복나눔재단 등에서 지원받아 온 이른바 ‘사회적 기업’이다. 황 씨처럼 나이가 많다든지 여러 가지 이유로 일반 고용시장에서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이들이 일하는 곳이다.
황 씨의 환한 표정에서 그가 12년간 알코올의존증에 빠져 있었다는 어두운 과거를 읽어내기는 불가능했다.
알코올의존증에 빠지기 전까지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형 금융회사에 다녔다. 그러나 금융사고를 당해 살던 집마저 날리고 빈털터리가 됐다. 좌절감에 한번 입에 댄 술이 점점 늘면서 하루에 소주 5병을 마셨다. 낮에는 골방에 틀어박혀 마시고 밤이 되면 소주를 사러 나갔다.
그러던 중 황 씨는 ‘제발 술 좀 끊어라’는 가족들의 성화에 마지못해 포천센터에 취직했다. 그러나 알코올의존증으로 대인기피증이 심했던 황 씨는 포천센터에 입사하고서도 배달할 도시락을 실어 나를 때를 빼놓고는 줄곧 센터 밖 승합차 안에 자신을 가두었다.
황 씨의 마음을 열어준 이들은 그가 도시락을 건네주던 사람들이었다.
장애인인 중년의 딸을 데리고 사는 할머니, 비닐하우스가 보금자리인 할아버지, 보육원에서 만난 구김살 없는 얼굴의 어린이들….
그는 “사정이 어려운 이웃들이 나를 반기고 도시락을 받으며 고맙다고 말할 때면 되레 내가 고마웠다”며 “주변에서 ‘사람대접’을 해줘 나를 일어서게 해준 이 일자리가 너무 소중하다”고 말했다.
○ 포천센터 월 매출 6000만 원
포천센터는 황 씨와 같은 취약계층의 22명을 고용해 매일 700여 개의 도시락을 배달한다. 월 매출은 6000만 원. 웬만한 중소기업 못지않다.
포천센터는 노동부에서 인건비를, 지방자치단체와 보건복지가족부 등에서 도시락 제조비용을 지원받아 운영된다. 처음에는 적자가 나는 금액은 행복나눔재단 등에서 받았지만, 이제는 재정 자립 비율이 90%에 달할 정도로 경영 자립을 이뤄 사회적 기업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포천센터가 성공하기까지는 지역사회의 ‘착한 소비’가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예컨대 한국마사회 의정부지점은 경마장 내 식당의 도시락과 각종 음식을 포천센터에서 공급받겠다고 나섰다. 주말이면 마사회를 통한 하루 매출이 200만 원에 이르기도 한다. 주민들도 반상회를 열 때와 학교 행사 때 포천센터에 도시락을 주문하는 등 힘을 보탰다.
포천센터 직원들도 수익사업을 벌여 자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추석 무렵에는 ‘포천 이동갈비’가 유명하다는 점을 착안해 갈비세트를 판매했다. SK그룹 관계사는 앞으로 경영학석사(MBA) 출신 직원들을 이곳에 보내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프로보노(pro bono)’ 운동에 참여해 포천센터의 자립을 측면 지원할 예정이다.
○ 취약계층이 행복한 일자리
이처럼 정부, 기업, 지역사회가 ‘삼각편대’를 이뤄 포천센터를 지원하는 노력은 결국 포천 지역사회로 돌아왔다. 포천센터의 도시락을 받아먹는 결식아동들이 대표적 사례. 이전까지만 해도 지자체에서 나오는 쿠폰 등으로 지정된 식당에 가 끼니를 해결해야 했으나 이제는 그런 창피함을 겪지 않아도 된다.
포천센터 직원들도 일자리를 통해 월급(83만7000원)뿐 아니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행복한 경험을 하고 있다. 포천센터에서 일하는 이영신 씨(48)는 “수차례 자살 기도를 하는 등 생활비 마련에 급급했던 생활을 청산했다”며 “나보다 사정이 더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서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김도영 SK텔레콤 사회적책임 담당 부장은 “경기침체로 각 분야의 고용확대가 쉽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기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동아일보 캠페인으로 더욱 활성화됐으면 한다”며 “이는 결국 우리 사회가 더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포천=김유영 기자 abc@donga.com
■ 사회적 기업은
사회사업+일자리…홀로서기 가능하게
사회적 기업은 급식 보육 친환경 등 사회적 목적을 위한 사업을 하면서 특히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기존의 자활 근로사업 등이 일회성 지원에 그친다는 점을 보완해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목표다.
2008년 말 현재 노동부 인증을 받은 사회적 기업은 218개이다. 노동부는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을 시행해 사회적 기업에 재정·세제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인기 아이스크림 업체인 ‘벤앤드제리’가 지원하는 ‘주마 벤처스’의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는 벤앤드제리가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아이스크림 제조법을 전수한 뒤 주마 벤처스 브랜드로 프랜차이즈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방식. 1994년부터 매년 저소득층 청소년 200여 명이 이를 통해 일자리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