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당직자들 소화기 뿌리며 진입 시도 2일 오후 국회 본청에 미리 들어간 민주당 당직자들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려는 동료 당직자들의 손을 잡아 끌어올리고 있다. 당직자들은 화재 진압용 소화기를 뿌리며 진입을 저지하는 경찰에 대항했다. 안철민 기자
▼발목잡기 석달▼
민주 ‘대기업 지상파 진입 배제’ 與 양보안도 거부
“반대 위한 반대 이미지 굳어질라” 내부서 자성론
쟁점 법안이던 미디어 관계법에 대해 민주당이 2일 ‘100일 동안 논의 후 6월 임시국회 표결 처리’에 합의하자 정치권에서는 “이렇게 할 거라면 무엇 때문에 그동안 정부 여당의 발목을 잡았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은 그동안 “미디어 관계법은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라며 미디어 관계법이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극력 저지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5일 고흥길 문방위원장이 미디어 관계법을 직권상정한 후에야 ‘협상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나라당이 1일 밤 대기업이 지상파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수정안까지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거부했다. 재벌의 방송 장악 저지를 명분으로 삼았던 민주당이 정작 대기업의 지상파 지분을 일절 허용하지 않겠다는 한나라당의 제안을 거부한 것은 그동안 법안 저지의 명분과도 상충하는 것이다. 그러다 2일엔 미디어 관계법의 처리 시한은 물론 처리 방법에도 합의를 해줬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그동안의 투쟁이 명분과는 달리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 중진의원은 “한나라당이 큰 양보를 할 때도 반대하다 갑자기 처리 시한과 표결 처리에까지 합의해 준 것은 잘못”이라며 “‘그렇게 쉽게 타협해 줄 수 있는 것을 놓고 왜 싸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할 말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앞으로 한나라당을 압박해 유리한 국면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지만 한나라당이 정책기조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특별한 상황이 없을 경우 100일 후 표결 처리를 통해 한나라당 안대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은 이날 밤 열린 의원총회에서 지도부를 성토했다. ‘의원직 총사퇴’라는 압박카드로 미디어 관계법 반대를 외쳤던 지도부가 표결 처리에 합의한 것은 ‘백기 투항’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온건파 의원들은 “합의가 가능한 것은 진작 한나라당에 양보했어야 했다”며 지도부의 협상력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미디어 관계법 문제에 대해 민주당과 공조해 온 민주노동당은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국민에게 답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우물쭈물 석달▼
金의장, 중재 성공했지만 “소극적” 비판 시달려
한나라선 “민주당 2중대” 민주선 “결국 친정편”
2일 여야가 전격적으로 쟁점 법안 처리를 막판에 타결할 수 있었던 것은 김형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압박 카드가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여야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올 수 있었던 직권상정 카드를 뒤늦게야 내놓은 것에 대해선 지나치게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려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는 국회 파행사태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국회가 벼랑 끝에 처했을 때에야 마지못해 직권상정 카드를 빼든 것 같은 인상을 남겼다.
김 의장은 1일 밤 여야 대표 회동이 최종 결렬됐을 때만 해도 내심 미디어 관계법의 직권상정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실무진에 직권상정에 필요한 절차를 밟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방송법 등 쟁점 법안 4개는 4개월 동안 논의한 다음에 국회법 절차를 따라 처리하자는 김 의장의 최종 중재안이 나오고 여야가 잠정 합의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나라당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공성진 최고위원은 “그게 민주당 안이지 무슨 중재안이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안경률 사무총장은 “개인적 욕심 때문에 한나라당을 반신불수로 만드는 것”이라고 김 의장을 비판했다. 한 핵심 당직자는 “김 의장은 민주당 2중대”라는 격한 표현도 썼다.
하지만 여당이 중재안을 거부하고 전방위적으로 김 의장을 압박하고 나서자 김 의장은 2일 오후 미디어 관계법 등 법안 15건을 직권상정하기로 결심하고 심사기일을 지정했다.
김 의장의 완강한 태도에 민주당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협상에서도 미디어 관계법의 처리 시한을 정할 수 없다며 버티던 민주당은 급기야 먼저 ‘100일 논의 후 표결 처리’라는 협상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민주당은 “결국 김 의장이 친정을 위해 직권상정의 칼을 빼들었다”고 말했다. 여야는 일촉즉발의 본회의장 충돌 위기를 앞두고 극적인 타결로 파국을 면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미디어법 논의를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설치에 대해 “입법 활동의 핵심 일을 외부인이 참여하면 국회의원은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국회의장이 국회의원의 혼을 가진 사람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이철 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