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평가전 세이부전을 불과 1시간 정도 남겨두고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선발 라인업을 고쳐야 했다. 3번타자로 못박았던 추신수(클리블랜드)가 돌연 팔꿈치 이상을 호소, 결장하게 됐기 때문이다. “평가전인데, 뭐”라며 애써 의연해했지만 유독 김 감독의 인내력을 끝없이 시험하는 가혹한 불운이 거듭되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3번에는 김현수(두산)가 올라왔고, 이용규(KIA)가 우익수로 들어왔다. 이대호(롯데)는 3루수로 시험받았고, 지명타자로는 이진영(LG)을 넣었다. 돌발사태로 김 감독의 첫 일본 평가전은 어수선하게 시작됐지만 이 경기를 지켜본 일본은 위협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김태균(한화)의 결승 2점홈런 한방으로 모든 상황이 정리된 것이다.
○日 기자“승엽 없으면 한방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 일본 기자는 “(이승엽이 빠져서) 한국팀의 장타력이 형편없을 줄 알았는데 그 한방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고 인정했다. 작년 일본 챔피언 세이부의 와타나베 히사노부 감독은 “한국은 두 가지 스피드가 무섭다. 하나는 투구 스피드고, 또 하나는 스윙 스피드”라고 감탄했다.
○김태균이 잘 해야 하는 이유
아이러니컬하게도 김태균은 이승엽(요미우리) 불참의 최대 수혜자다. 순식간에 대표팀 주전 1루수 겸 4번타자 제1옵션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콘클라베 방식’으로 대표를 선출할 때 김태균은 사실상 유일한 만장일치 케이스였다. 김 감독만 유일하게 뽑지 않았다. 제자여서였다.
그러나 ‘포스트 이승엽’으로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국프로야구 홈런왕이 김태균이다. 늘 유쾌한 김태균이지만 말속에 책임감이 절절히 묻어난다. 김태균은 “제1회 WBC는 솔직히 공 주우러 간 거였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힘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하와이부터 연습해서 컨디션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2일 세이부전 3회 결승 2점홈런으로 한국엔 이승엽만 있는 게 아니라고 몸으로 보여줬다. 추신수, 이대호와 더불어 한국야구 거포 계보의 세대교체를 예감케 하는 한방이기도 했다.
○김태균이 잘 할 수밖에 없는 이유
김태균은 홈런왕 이미지가 강하지만 ‘콘택트 히터’라고 자평한다. 2일 인터뷰에서도 “홈런을 노리면 컨디션이 나빠지니까 정확히 맞히는데 주력한다”고 ‘홈런 비결’을 말했다. 실제 결승홈런도 밀어쳐서 우중간 담장을 넘겼다. 이 점에서 도쿄돔은 ‘김태균 친화적’이다.
김태균도 자기와 궁합이 맞는다는 걸 2일 첫 연습부터 알아봤다. 그는 “연습할 때부터 타구가 생각보다 멀리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안 넘어갈 타구도 넘어가더라”며 일본팀이 부담을 느낄 발언을 꺼냈다. 또 “감독님이 직구 노리라고 주문했는데 적중했다”며 비결을 공개했다.
대표팀은 김태균의 홈런에 힘입어 10안타를 치고 4-2로 승리했다. 김현수(2안타)-김태균(3안타)이 절반을 책임졌다. 선발 후보 봉중근(LG)과 김광현(SK)은 55구와 49구를 던졌다.
도쿄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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