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청 사내는 언제부터 달고 다녔냐고?
그것은 민선이 묻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탐문 수사를 하다가 사라와 만났었다고 석범이 둘러댔지만, 믿기 어려운 핑계였다.
"솔직히 말할게요. 그 사람, 은석범 검사랑 한 번…… 따로 만났어요."
"따로 만났다고요? 맞선이라도 본 건가요? 그렇군요. 어쩜, 전 영원히 로봇과 결혼한 줄 알았는데……."
늘 연구에 빠져 사내 따윈 안중에도 없던 민선이었다.
"그 얘긴 그만해요. 자, 어서 날 이 텅 빈 방으로 데려온 이율 말하세요. 아님 그냥 갈래요."
민선이 자리에서 일어서려하자 사라가 팔목을 붙들었다.
"어제 일을 확인하고 싶어요."
"어제 일이라뇨?"
민선이 딴전을 피웠다.
"왼발이 뽑힌 뒤 그러니까 제가 수술실로 급히 옮겨진 다음에 글라슈트의 이상 행동을 민선 씨도 목격했죠?"
"글쎄요. 뭘 이상 행동이라고 하는 건지 잘……."
다시 민선이 눈동자를 치뜨며 즉답을 피했다. 사라가 또박또박 어제 일을 되짚었다.
"글라슈트와 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한 몸이었죠. 제 움직임을 글라슈트가 시간 격차 없이 동시간대에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니까요. 헌데 대련에서 뜻하지 않게 제 왼발이 뽑힌 뒤, 글라슈트가 쓰러지지 않고 그러니까 왼발을 들고 오른발로만 섰다 들었습니다. 스스로 균형을 잡았단 말이죠.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쓰러졌으니 글라슈트도 쓰러져야 합니다. 한 몸인데, 저는 쓰러지고 글라슈트는 서 있는 게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많은 미래학자들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미스터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예상은 틀렸다. 2049년 특별시 곳곳에 납득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고, 그 일들만 따로 묶은 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로봇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곱절에 곱절씩 늘어났다.
"과학적으로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중요한 지점이 아닙니다. 글라슈트는 외발로 섰고요, 저는 이 두 눈으로, 꺽다리와 뚱보 연구원도 함께, 글라슈트가 멋지게 균형을 유지하는 걸 구경했답니다."
사라가 답답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완전자동 시스템으로 전환했다면, 글라슈트 스스로 상황 변화에 맞춰 달려들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고 외발로 서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땐 완전자동 시스템이 아니라 수동으로 전환된 상태였어요. 저만 따르기로 되어 있었다니까요."
"맞습니다. 사라 씨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으니 글라슈트 역시 훈련장 바닥에 등을 대고 널브러져 있어야 옳지요."
사라가 말꼬리를 잡아챘다.
"널브러져! 맞아요. 글라슈트는 항상 그랬거든요. 내가 멈추면 자기도 멈추고 내가 누우면 자기도 눕고 내가 널브러지면 자기도 널브러지고."
"'자기'라……. 애인 부르듯 하시네요."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농담이 아니에요. 사라 씨와 글라슈트가 한 마음 한 몸으로 연결된 건 맞아요. 근데 어젠 글라슈트가 사라 씨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한 꼴이 되었네요. 격투 로봇인 글라슈트가 자유의지를 지닌 것처럼 비쳤으니 참 이상한 일이죠. 과학자인 제가 판단하기엔 로봇이 자유의지를 가질 턱이 없으니, 사라 씨와 글라슈트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었는지를 면밀히 조사하는 쪽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어떤 식으로 연결되다니요? 그야 프로그래밍이……."
"프로그래밍을 따지려면 제가 '바디 바자르'까지 올 이유가 없죠. 꺽다리와 뚱보 연구원 도움 받아서 이미 프로그래밍 체크도 마쳤고요. 문제점은 물론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사라 씨! 사라 씨는 마음이 하나라고 생각하나요?"
민선이 말머리를 돌렸다.
"마음이 하나냐고요?"
사라가 짧게 반문하며 민선을 노려보았다.
"빛을 예로 들어볼까요. 인간은 태양에서 오는 빛 중에서 가시광선 영역의 빛만 인지할 수 있습니다. 자외선이나 적외선 같은 영역은 볼 수 없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내 몸은 보이지 않는 빛에 반응합니다. 적외선을 통해 열을 느끼고 자외선 때문에 노화가 촉진되기도 하지요. 인식하진 못하지만 그 빛들은 당연히 존재하고 심지어 그것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사라 씨가 인식하는 마음 외에, 사라 씨 안에 내재된 다른 마음은 더 없을까요?"
"내 안에 내가 인식하지 못한 마음이 있을 수 있단 말씀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