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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육아해직! 신청자수 ‘씁쓸한 상승곡선’

입력 | 2009-03-04 18:51:00


임신 9주차인 S씨는 재직 중인 중소기업에서 출산휴가를 간 선례가 없어 퇴사할 예정이다. 회사는 업무 특성상 임신하면 당연히 퇴직할 것으로 생각하는 데다 요즘 사정도 좋지 않아서다. S씨는 육아휴직기간에 회사가 부담하는 건강보험 비용까지 자비 납부하기로 하고 출산휴가에 이어 육아휴직을 하는 것으로 회사와 합의했다. S씨는"출산휴가급여 135만원씩 3개월에다 육아휴직급여를 50만원씩 최장 12개월을 받을 수 있다"며 "어차피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고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경기 불황으로 정리해고 1순위인 임신 중이거나 출산을 앞둔 여성 근로자들이 퇴사 대신 육아휴직을 하는 형식으로 회사 측의 부당 해고를 수용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어차피 퇴사해야 한다면 육아휴직급여라도…"

육아휴직 이후 퇴사를 약속하는 사실상 해고와 마찬가지이지만 서류상으로는 고용상태를 유지하는 편법을 쓰는 것. 요즘 기업의 인력감축 의지가 확고한 탓에 퇴사 압력이 심한데다 출산 휴가 후 복귀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퇴사 대신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근로자는 월 50만원의 육아휴직 급여를, 회사 측은 월 20~30만원의 대체인력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임산부 근로자는 '울며 겨자먹기'로 금전적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육아휴직을 선택한다.

노동부는 지난해 육아휴직급여 수급자수는 2만 9145명으로 2007년보다 37.5%로 늘어났고 급여 지원액도 984억 3100만원으로 61.4%나 증가했다며 육아휴직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되어 간다고 자평했다. 올해 들어서는 1월에만 육아휴직급여를 2746명이나 받아 지난해 12월 2499명에 비해 247명이 또 늘었다.

그러나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운영하는 '평등의 전화' 상담 통계를 살펴보면 성차별과 관련한 상담 중 임신-출산으로 인한 해고 상담이 차지하는 비중이 34.8%에서 지난해에 55.7%로 절반이 넘어선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임신- 출산 여성 근로자에 대한 고용 불안정성이 커진 것과 다르게 육아휴직급여 수급자만 늘어난 것이다.

박종천 노무사는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업에서 임산부 근로자들을 우선 해고하고 있다"며"회사 측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소송에 이겨 복직을 하더라도 정상적인 회사 생활도 불가능하므로 서류상 육아휴직이라는 차선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차라리 권고사직 시켜주세요"

임신 17주차인 L모 씨는 지난 달 구조조정 과정에서 연봉 수준도 다르고 업무 내용도 연관성이 없는 전혀 다른 부서에 배치가 되었다. 인사부에 문의하니 인사 고과가 낮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L씨는 다른 임신한 선배들이 결국 회사를 관두었던 전례를 볼 때 임신이 이유일 것이라 짐작했고 차라리 회사 측에 권고사직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L씨는"출산휴가 이후에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바에야 권고사직을 당하고 실업급여를 받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씁쓸해했다.

사용자가 산전·후 휴가기간 또는 종료 후 30일 이내에 근로자를 해고하게 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따라서 회사 측은 부당 해고 대신에 자진 퇴사를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압력을 가하게 된다. 대다수 근로자들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실업급여라도 받기 위해 오히려 회사 측에 권고사직을 요청하게 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실업급여는 최소 하루 2만 8800원씩 최장 240일까지 받을 수 있다.

박문배 노무사는"올해 들어 임산부 근로자들의 상담이 2배나 늘었다"면서 "대체인력 채용, 고용보험 비용, 퇴직금 누적 등 임산부 고용 비용을 기업에만 전가해서는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임산부 고용을 기업이 꺼려하지 않으려면 근로자보다는 사용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한 것을 제안했다.

여성정책연구원 홍승아 연구위원은 "프랑스에서도 90년대 중반 경기 침체기에 여성 근로자들이 양육 수당을 받기 위해 퇴직을 하는 사례가 많아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다"며 "재정적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모성권 보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용자 측의 부당 해고를 근로자가 묵인할 경우 적발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올해에는 사업주들의 여성 인력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일-가족 양립 정책을 적극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