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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재판 당부 ‘부적절한 영향력’ 논란

입력 | 2009-03-06 02:59:00


신영철 대법관,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판사들에 ‘압력성 e메일’

“위헌제청 사건 현행법따라 결론을”… e메일 앞에는 ‘대내외비’-‘친전’ 표기도

野 “법관의 독립 침해한 탄핵 사유”

2008년 10월 14일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 않지만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위헌제청을 한 판사의 소신이나 독립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법원이 일사불란한 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의해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두 가지 메시지였습니다.

2008년 11월 6일

…부담되는 사건들은 후임자에 넘겨주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또 우리 법원의 항소부도 위헌 여부 등에 관한 고려를 할 것이기 때문에, …적당한 절차에 따라 통상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생각입니다. 또 제가 알고 있는 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외부(대법원과 헌재 포함)의 여러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기도 합니다.》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맡고 있던 지난해 10, 11월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 관련자 재판을 맡은 형사 단독 판사들에게 선고를 재촉하는 취지의 e메일을 보낸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e메일 내용에는 이용훈 대법원장도 이에 관여한 듯한 표현도 들어 있다. 대법원이 5일 즉각 진상조사에 착수한 것도 사안이 간단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신 대법관의 동의를 얻어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긴 e메일 내용 등을 파악한 뒤 신 대법관이 개별 재판에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e메일에 어떤 내용 담겼나=신 대법관이 형사단독판사 11명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진 e메일은 모두 6건이다. 지난해 7월 15일과 8월 14일 보낸 e메일은 선고형량에 큰 차이가 나서는 안 된다는 양형의 통일을 강조했고, 10, 11월에 보낸 e메일에서는 신속한 재판을 당부했다.

11월 6일 ‘야간집회관련’이라는 제목으로 보낸 e메일에서 신 대법관은 “부담되는 사건은 후임자에게 넘기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미덕이고 항소부도 위헌 여부에 관해 고려할 것이므로 구속사건이든 불구속사건이든 적당한 절차에 따라 통상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것이 나의 소박한 생각”이라고 밝혔다. e메일 서두에는 ‘대내외비’ ‘친전’이라고 표기했고, 말미에는 “제가 알고 있는 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외부(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포함)의 여러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했다.

e메일이 발송된 시점은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관련자들이 보석으로 풀려나고 재판도 3건 이상 중단된 이후였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는 안진걸 국민대책회의 팀장의 재판을 진행하다가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고 재판을 중단했다. 일부 다른 재판부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자며 재판을 중단했다.

신 대법관은 같은 달 24일 다시 e메일을 보내 “(헌재가) 위헌제청 사건을 내년 2월 공개변론 후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피고인이 위헌 여부를 다투지 않고 결과가 신병과도 관계없다면 통상적 방법으로 현행법에 따라 결론 내주기를 당부한다”고 했다.

▽대법원도 관여했나?=앞서 10월 14일 신 대법관은 ‘대법원장 업무보고’라는 제목의 e메일에서 “대법원장께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가 있어 야간집회 위헌제청에 관한 말씀도 드렸다. 대법원장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지만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이는 ‘신속한 재판’ 요구가 단지 자신의 뜻만이 아니라 이용훈 대법원장의 뜻이라는 ‘민감한’ 내용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5일 “이 대법원장이 그런 뜻을 밝힌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진상조사 과정에서 이 부분도 명확하게 가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이날 퇴근하면서 ‘조사는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법원행정처장이 (조사)하니 난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야당에서는 신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발의 얘기가 나왔다. 민주당 이재명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신 대법관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해 헌법 제103조를 위반하고 인사청문회에서 위증해 국회법을 위반한 것은 헌법 제65조에서 정하고 있는 탄핵 사유”라고 밝혔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동아닷컴 정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