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세상을 휩쓴 인터넷 광풍은 전 국민을 정보기술(IT) 전문가로 만들었고, 그로부터 몇 년 후 일어난 줄기세포 논란은 전 국민을 생명공학도로 만들었다. 이번에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는 우리를 경제의 달인으로 만들고 있다.
요즘 웬만큼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경제 공황이나 금융 관련 서적 한두 권쯤은 탐독했을 것이다. 아니 매일 쏟아져 나오는 경제 기사만 봐도 어느덧 스스로 글로벌 경제 전문가가 돼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듯이 ‘오늘’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들은 ‘미래’를 읽는 데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07년 초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문제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집값 문제였지만 이어서 주택경기보다는 파격적인 금리인하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여름엔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는 고유가가 뉴스의 핵으로 떠오르며 모든 관심이 여기에 쏠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곧 각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관심거리로 부각됐고 지금은 금융 부실의 전염과 추가 구제책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제 시간이 조금 지나면 경기침체는 더는 쇼킹한 뉴스가 아닐 수도 있다. 만인이 체념하고 누구나 아는 경기 악재는 이미 금융시장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환율 문제 또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잠잠해지고, 미국 은행의 국유화나 건전성 문제도 시간이 지날수록 따끈한 뉴스로서 가치를 잃을지 모른다.
새로운 이슈가 터지면 그전의 뉴스들은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그래서 고민거리는 늘 돌고 도는 모양이다. 어쩌면 같은 뿌리에서 나온 문제들이 계속 얼굴만 바꿔 돌아가며 현실을 괴롭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세상을 의외의 방향으로 몰고 가는 새로운 촉매나 방아쇠는 늘 예상치 못한 구석에 숨어있다. 모두가 가볍게 여기거나 설마 하던 문제가 어느 날 갑자기 코앞에 닥쳐 당황하는 일을 우리는 너무 많이 경험해왔다.
이런 측면에서 현실 경제는 앞으로 단기 유동자금의 자산가격 때리기나 그로 인한 기습적인 인플레이션, 달러 가치와 국채 가격 폭락, 재정 악화의 부작용, 환율시장의 혼란, 그리고 각국의 제 살길 찾기와 국제질서 혼돈 같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문제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
이제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온 요인들은 죄다 드러났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앞선 상상 속 악재들이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증거를 찾는 일이다. 특히 변장의 마술사처럼 새로운 얼굴로 등장하는 금융시장의 악재들을 미리 그려 두는 것은 기우가 아니라 위기관리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