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호찌민(옛 사이공) 시에서는 반팔을 입고 다녔는데, 하노이의 기온은 한국처럼 쌀쌀했다. 한국 기업인들의 출입이 잦은 호찌민 시와 달리 하노이에는 할롱베이 관광객이나 늦장가를 가려는 농촌 총각들이 주로 들른다. 나는 호찌민 시에서 기업인 일행과 헤어져 혼자 하노이 공항에 내렸다. 영어 가이더인 투엇 씨(27)는 내게 “35세쯤 돼 보인다”며 “신붓감을 구하러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할롱베이 관광객은 40∼50명씩 남녀가 단체로 와 버스를 타고 다닙니다. 혼자 온 한국인은 십중팔구 신붓감을 찾는 노총각이죠”라고 말했다.
시내로 들어오는 차 안에서도 베트남 신부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국 농촌으로 시집 간 베트남 여성들은 논밭에 나가 힘든 일을 한대요. 베트남 여성들이 한류(韓流)의 영향으로 한국을 동경하지만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은 잘사는 도시거든요. 이런 이야기가 신문에 많이 나는 바람에 하노이 호찌민 같은 도시 여성들은 한국으로 시집가기를 꺼리죠. 그렇지만 베트남 농촌에서는 중개인을 통한 매매혼(賣買婚)이 성행합니다. 3000달러만 쥐고 농촌에 가면 맘에 드는 여성을 고를 수 있어요. 부모에게 2000달러가 돌아가고, 중개인이 1000달러를 챙깁니다.”
韓流동경한 결혼의 두 모습
투엇 씨를 따라간 하노이 식당에서는 양 볼에 여드름이 귀엽게 난 21세 여성이 음식을 날랐다. 부산으로 시집간 언니는 그녀의 역할 모델이었다. 언니는 컴퓨터 회사에 다니고 형부는 운전사로 맞벌이를 해 꽤 행복하게 산다고 했다.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이 여성은 “장동건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호찌민 대묘(大墓)를 찾았다. 호찌민 대묘는 김일성의 미라가 안치된 북한의 금수산 기념궁전의 웅장함이나 호화스러움에 비할 바는 못 됐다. 흰색 인민복을 입고 누워 있는 호찌민 미라의 네 귀퉁이에 의장병이 서 있었다. 북한처럼 미라를 향해 고개를 숙이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모자만 벗으면 그만이었다.
호찌민은 유언장에 시신을 화장해 조국의 북부 중부 남부 세 곳에 나누어 뿌리라는 내용을 담았지만 당 지도부가 유언을 무시하고 소련 기술로 미라를 만들었다. 호찌민이 죽기 전까지 살았던 방 두 칸짜리 집은 검소했다. 별채 부엌에는 특이하게 침대가 놓여 있었다. 호찌민은 미국 공군기의 하노이 폭격이 있는 날에는 부엌 침대에서 자다가 바로 옆 방공호로 대피했다.
호찌민은 젊은 시절 30년 동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해외 문물을 공부하고 항불(抗佛) 독립운동을 벌였다.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캄보디아어 등 6개 국어를 했다. ‘호찌민 평전’을 쓴 윌리엄 J 듀이커는 ‘반은 간디고, 반은 레닌이었던 인물’이라며 ‘지도자로서 놀라운 재능을 결함 많은 이데올로기에 바친 것이 호찌민의 비극’이라고 논평했다. 그것은 또 베트남 인민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베트남에서는 호찌민에 대한 국가적 숭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지폐의 액면(額面)에 호찌민 초상이 들어 있다. 베트남 역사에는 몽골을 물리친 쩐흥다오 장군도 있고, 15세기 초 중국 명나라를 격퇴하고 다이비엣(大越)이라는 나라를 세운 레러이도 있다. 그러나 어떤 지폐에서도 호찌민 아닌 다른 영웅들의 초상은 보이지 않았다.
베트남은 1986년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을 채택하고 도이머이 개방정책을 펴기 시작한 이래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정치 이념보다는 경제에 관심이 높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매춘 에이즈 마약도 늘어난다. 호찌민 숭배는 이 같은 시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사회주의 체제의 정통성을 유지하려는 국가의례로 보였다.
이념에서 멀어지는 젊은이들
나는 남은 시간에 혁명박물관을 보자고 재촉했지만 투엇 씨는 미적거리다가 문 닫기 30분 전에 데리고 갔다. 혁명박물관은 베트남 공산당의 역사와 베트콩들의 투쟁, 그리고 미군기 폭격의 참상을 전시하는 곳이다.
투엇 씨는 혁명박물관 대신 새로 개장한 대형 쇼핑몰 ‘빈컴’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빈컴 4층 가전제품 매장에는 삼성 LG 제품이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세계 유명 브랜드가 집결한 신흥 명소 빈컴은 하노이의 새로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통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경제발전 면에서 사이공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 호찌민 시보다 썰렁하게 느껴졌다. 나는 투엇 씨와 함께 빈컴 6층 극장에서 액션 스릴러 영화 ‘테이큰(Taken)’을 관람하고 밤 비행기로 하노이를 떠났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