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회
긴급 구조 로봇들이 검은 팔을 가운데 두고 사방에서 조심조심 접근을 시작했다. 로봇들은 제2차 제3차 붕괴를 막기 위해 긴 더듬이를 쉴 새 없이 흔들어댔다. 전후좌우 자유롭게 뻗어가는 여섯 개의 기계손이 제거 목표를 동시다발로 정확히 집어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검은 팔을 뽑고 싶었지만 석범은 참고 또 참았다. 저것이 사라의 팔이라면 주위에 민선이 있을 지도 모른다. 서두르다가 잘못해서 민선을 덮은 콘크리트나 철골을 무너뜨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어깨가 드러나고 그 다음은 엉덩이 뒤이어 짓눌린 오른 가슴을 철골 사이로 빼낸 후 등 뒤로 꺾여 너덜거리는 팔을 돌려 제자리를 잡았다.
사라는 내내 눈을 뜨고 있었다. 눈동자를 돌리며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표정이 역력했다. 무엇인가 이야기하려는 듯 입술을 오물거렸지만 말을 뱉지는 못했다.
"납니다. 날 알아보겠소?"
석범이 열 걸음 밖에서 외쳤다. 사라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추락하면서 손상을 입은 인공 안구들이 그를 포착 못한 것이다. 시력뿐만이 아니라 청력도 말썽이었다. 석범이 고함을 지를 때마다 사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단어가 하나하나 전달되지 않고 우웅우우웅 뭉쳐 떨리면서 뇌를 흔드는 모양이었다.
신체의 다른 부위도 고장 난 로봇처럼 제각기 흩어졌다. 오직 검은 팔만 꼿꼿하게 하늘을 찌를 듯 우뚝했다. 천천히 사라의 눈꺼풀이 감겼다. 정신이 흐려지는 것이다.
"눈 떠요. 감으면 안 돼. 날 봐. 나 알아보겠소?"
석범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 소리를 들었을까. 사라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다시 올라왔다.
"조금만 참아요, 제발 조금만! 절벽을 오른다고 생각해요. 한 번만 더 손을 뻗으면 정상인 게요. 이제 다 왔소. 손끝에 힘을 싣고 올라가는 상상을 해요. 올라가는 게요. 다 왔소."
두 시간의 구조작업 끝에 사라를 짓누르던 콘크리트 더미를 모두 제거했다. 왼발이 잘려나가고 오른 가슴이 움푹 팬 흉한 몰골이었다. 83퍼센트가 기계몸이 아니었다면 벌써 출혈과다로 숨졌으리라.
석범이 사라의 입술에 귀를 대고 물었다.
"혼자뿐이었소? 민선은? 노민선 박사는 어딨소?"
"…… 같이 떨어졌어요."
사라는 겨우 일곱 글자를 뱉은 후 경련을 일으켰다. 기계몸의 손상이 나머지 생체에도 충격을 준 듯했다.
사라가 실려나간 뒤, 석범은 다시 잔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앨리스와 병식이 쭈뼛쭈뼛 그 뒤를 어슬렁거렸다. 앨리스가 참지 못하고 석범에게 말했다.
"검사님! 더 이상 생명 신호가 없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방금 45세 남자를 후송한 것을 마지막으로 구조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만 하세요. 대체 노민선 박사와 무슨 관련이 있으신데,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친척이십니까? 애인이라도 되십니까?"
"남형사! 서사라가 그랬잖아, 같이 떨어졌다고. 그럼 이 근처에 있을 거야. 사라만큼 중상을 입었다면 시간이 없어."
"시간은 벌써 한참을 지났습니다."
석범은 앨리스의 단정에 반발했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앨리스가 석범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반복했다.
"생존 가능 시간이 지났다고요. 검사님! 방송국에도 가봐야 합니다. 사망자들의 뇌를 확보하고 테러 최초 발생 지점을 챙기기에도 시간이 빠듯합니다. 어디 묻혔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느라고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이 주윈 긴급 구조 로봇들이 끝까지 맡을 겁니다. 시신이 있다면 거두겠지요. 쪽으로 가야 합니다. 당장!"
정확한 지적이었다. 석범은 맞대응을 못 하고 잔해 더미만 자꾸 쳐다보았다. 앨리스가 매몰차게 돌아서서 먼저 현장을 빠져나갔다. 병식이 석범 곁으로 와서 거들었다.
"그만 가시죠. 남형사가 성격은 괄괄해도 그른 소린 안 한다는 거...... 검사님도 아시죠?"
그때 댕강 잘린 기둥 뒤에서 창수가 뛰어왔다. 그는 테러 관련 실시간 데이터를 분석 검토하기 위해 차에 남았었다. 현장을 벗어났던 앨리스도 뒤따라 다시 왔다. 창수가 가쁜 숨을 헐떡이며 석범 앞에 섰다.
"살인사건입니다. A아파트 44층 302호! 두피가 벗겨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