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는 부엉이 빌딩에서 A아파트까지 가는 동안 검색 엔진을 돌렸다. A아파트 44층 302호에서 살해된 피해자 시정희(55세)는 20년 째 이 아파트에서 홀로 지냈다. 직업은 프리랜스 작가. '도그맘'이란 필명으로 동물 관련 잡지에 정기적으로 에세이를 기고했다. , , , 등의 연재물은 꾸준히 읽혔다.
"완전 개판입니다."
앨리스가 에세이들을 따라서 등장하는 다양한 개들을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이브리드 전기차가 아파트촌으로 들어섰다. 은은한 조명 아래 아파트들은 녹음이 우거진 봉우리처럼 세련되고 사랑스러웠다.
특별시민의 주거환경은 빈부 격차에 따라 크게 양분되었다. 부유할수록 인구밀도가 낮고 친환경적인 단독주택을 선호했다. 30년 전만해도 고급아파트가 밀집했던 한강 남쪽 지역도 지금은 단독주택 촌으로 탈바꿈했다. 재산이 넉넉한데도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아파트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아파트촌이 건설되기도 했다. 이 아파트촌은 네모 상자에 콘크리트 벽이 흉하게 드러나는 빈민가 아파트와는 달랐다. 덩굴이 아파트 벽을 타고 자랐으며 실내 정원을 꾸밀 공간도 넉넉했다. 히말라야 산맥 청정 지역과 맞먹을 만큼, 특별시에서 가장 맑은 공기를 지녔다는 것이 A아파트의 자랑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노루나 토끼를 위한 지상낙원 같군.
석범은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덩굴 사이로 부서지는 달빛을 쳐다보았다. 아파트 창을 뚫고, 노아의 방주로 모여들었던 짐승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상상을 했다. 봄 밤, 짧은 흥겨움, 추락, 단절…… 같은 단어들이 찾아들었다가 사라졌다.
"20년 동안 매일 팻-숍에 들렀습니다. 적게는 십만 원 많게는 천만 원까지 애완견과 관련된 온갖 물품을 사들였습니다. 대형 팻-숍을 다섯 개는 차리고도 남을 물품이군요. 근데 석 달 전부터는 팻-숍 출입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곧 도착하니까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동물학대로 고발을 당했습니다. 혀를 뽑고 다리를 자르고 거세하고! 인간 말종입니다, 정말."
"동물학대? 판결은?"
"일단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판결이 내렸습니다. 쿼런틴 게이트의 앵거 클리닉에 세 차례 다닌 기록이 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마칠 때까지는 개를 단 한 마리도 기르지 못한다는 명령서까지 첨부되었습니다. 그녀가 기르던 스무 마리는 따로 안전시설에 격리되었고요."
사건 현장은 어둡고 고요했다. 사체를 최초로 목격하고 신고한 가정부는 정신적 충격으로 호흡 곤란이 와서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현장을 지키던 경찰들도 반대쪽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석범을 따라서 앨리스와 창수 그리고 병식이 조심조심 걸었다.
사체는 천장을 바라보고 거실에 큰 대 자로 누웠다. 카펫은 붉은 피로 세계지도를 그린 듯 어지러웠다. 풍성한 잠옷 차림이었지만 두툼한 살집을 가리진 못했다. 석범과 앨리스는 사체의 두피가 벗겨진 머리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이번에도 뇌가 없었다. 예리하게 두개골을 가르고 뇌를 꺼낸 뒤 다시 맞춰놓은 것까지 특별시 외곽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같은 수법이다. 석범이 시신의 팔뚝을 가리켰다.
"이건 뭐지? 뭔가에 물린 것 같은데……."
앨리스가 검시용 펜을 갖다 대자, 짐승들의 입이 차트를 넘기듯 지나갔다. 그러다가 애완견 항목에서 멈췄다.
"개가 물어뜯었네요."
"개라니? 기르던 애완견들은 모두 격리시켰다고 하지 않았어?"
"그게…… 퍼그 한 마리를 길렀던 모양입니다. 평생 애완견과 함께 살았으니 외롭기도 했을 겁니다."
"어디서 언제 퍼그를 샀다는 거야?"
구입한 애완동물은 바이러스와 돌림병 예방을 위해 보안청에 등록하는 것이 필수였다.
"검사님도 참! 기록에 남았으면 당장 압수당했겠지요. 몰래 구했을 겁니다."
특별시 전체가 U-City(유비쿼터스 시티)로 전환하고 안전 지역을 표방한 지도 9년이 지났지만, 시스템의 틈을 노린 암거래 행위가 종종 적발되었다. 법 따위로는 인간의 욕망을 누를 수 없다고 말한 이가 누구였더라.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은 단골 밀수 품목이었다. 앨리스가 허연 두개골을 내려다보며 자신 있게 말했다.
"꽃뇌와 도그맘! 연쇄살인이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