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는 국제거래의 기준으로 삼는 ‘기축통화’예요
금융위기로 달러 많이 찍어내 가치가 떨어진 거죠
서로 다른 나라의 통화(通貨)를 교환할 때 적용하는 비율을 환율이라고 합니다. 세계에는 미국의 달러화, 중국의 위안화, 유럽의 유로화 등 다양한 통화가 있는 만큼 여러 가지 환율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환율’이라고 말할 때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을 가리킵니다. 미국 달러화가 국제 거래 때 기준이 되는 ‘기축통화(基軸通貨·key currency)’이기 때문입니다.
기축통화란 미국 예일대의 로버트 트리핀 교수가 처음 언급한 개념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상품과 서비스를 거래할 때 주된 통화로 쓰면서 각국 통화 간 교환율의 기준으로 삼는 화폐를 말하지요. 기축통화라는 말 대신 중심통화나 중심화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000여 년 전 사용된 ‘데나리우스’는 세계 최초의 기축통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데나리우스는 유럽뿐 아니라 터키 이집트까지 영토를 넓혔던 로마제국에서 활용되던 은화였습니다. 로마인들이 사치하면서 마구 돈을 찍어내다 보니 은화 한 닢에 들어가는 은의 양이 4%까지 떨어지면서 데나리우스의 가치가 떨어졌지요.
이슬람제국이 융성했던 시기에는 금화 ‘디나르’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슬람제국은 무역으로 크게 성장했는데 이때 디나르가 세계 곳곳에서 활용되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이어 상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던 베네치아의 금화 ‘두카토’를 거쳐 18세기 영국의 파운드화가 세계의 중심통화로 군림하게 됩니다. 이전까지 기축통화로 통용됐던 화폐들은 금이나 은 등 귀금속을 원료로 했습니다. 종이에 불과했던 파운드화가 기축통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영국이 세계 산업과 금융의 중심에 서면서 국제사회의 신용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화폐가 국제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화폐로서 계산 단위, 교환 수단, 가치 저장 등 세 가지 기능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기축통화로 활용됐던 화폐들은 세계의 정치, 경제 대국의 통화로 위와 같은 기준을 만족시켰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금 세계가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성장한 미국이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달러화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보장했기 때문입니다.
달러화가 기축통화로 자리 잡으면서 국가 간 자본이 더욱 원활하게 이동했고 세계 경제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 전반이 미국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지요.
지난해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화의 위상이 크게 흔들린다고 합니다. 돈이 부족한 미국이 달러화를 많이 찍어내면 장차 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지고 미국 경제가 튼튼하다는 믿음이 흔들리면서 달러화에 대한 신뢰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의 위력이 약해진 틈을 타고 엔화 위안화 등 다른 화폐들이 기축통화 자리를 노리기도 합니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주장(珠江) 강 삼각주를 비롯한 일부 지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 간 무역에서 위안화로 무역대금을 지불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달러화나 유로화를 제치고 중국 통화가 국제무역의 결제수단이 된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달러화 중심의 세계 기축통화 체제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지요.
또 일본은 예전부터 달러화나 유로화에 맞먹는 아시아 공동통화를 도입하자는 의견을 내왔고 러시아도 루블화를 기축통화로 발돋움시켜 지역경제의 중심에 서겠다는 꿈을 드러내왔습니다. 남미 중동 등에서도 지역 단일통화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요.
그러나 정부와 국민의 노력만으로 그 나라의 화폐가 널리 쓰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나라의 법, 경제 수준과 국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합니다. 또 국제사회의 신뢰가 없으면 아무도 그 나라 돈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겠지요. 금융위기가 지난 뒤 국제 경제에서 달러화의 지위가 어떻게 변할지 함께 지켜봅시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