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스타벅스
실직자가 300만 명을 넘어섰다.
실직 가장들이 찬바람 부는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정규직ㆍ비정규직은 물론 자영업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도 시련과 고통을 호소한다.
“나도 잘리면 어떻게 하지?”
용케 버티고 있는 사람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삶의 추락은 한 순간이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그러나 끝없는 절망의 나락(奈落)을 경험했던 미국의 한 늙은 백인 남자는 희망이 있다면 언제든 삶은 다시 시작된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예일대를 졸업한 마이클 케이츠 길(64). 세계 굴지의 광고회사 JWT(J. Walter Thompson)에서 수석이사까지 승진한 그에게 어느 날 예고도 없이 해고통지서가 날아든다.
28년간 가정도 뒤로한 채 온 인생을 맡겼던 회사에서 쫓겨난 그는 이후 사업실패와 불륜, 이혼, 가족해체라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추락을 10년간 경험한다.
그동안 쌓아온 인맥에 의지해 마지막까지 부활을 꿈꿔보지만, 끝내 월세를 걱정하는 무일푼 노인네 신세가 되고 만다.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한 그는 마지막 호사라고 생각하며 잔돈을 털어 어린시절 살았던 맨해튼 부유한 동네의 스타벅스에서 라테를 마신다.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하나?’
어릴 적 부모와 살던 저택을 바라보며 화려했던 과거와 암울한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그를 불쌍하게 본 것일까. 운명의 여신이 그에게 살며시 미소를 보낸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스타벅스 매니저 크리스털 톰슨(28)이 던진 한 마디. “혹시, 여기서 일할 생각 있어요?”
그때부터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청각신경종양’이라는 희귀병까지 앓고 있던 마이클은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한다는 크리스털의 말에 들뜬 목소리로 일하겠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크리스털은 그 이후로 몇 달 동안 연락이 없다. ‘힘없는 늙은 백인을 누가 쉽게 채용하겠는가’라며 초조히 기다리던 마이클에게 마침내 연락이 온다. 그러나 막상 출근이 결정되자 낯선 세계의 노동일에 뛰어들어야하는 두려움과 참담함, 창피함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일자리를 구하기에 너무 늙어버린 지금 내가 맞닥뜨린 현실은 자기 몸 하나 부양할 능력도 없고, 그 어떤 회사도 반겨주지 않는 노인들이 처한 잔인한 현실 바로 그것이었다. 불안하고 암담하고 창피하다.”
스타벅스에 첫 출근하는 날 마이클의 심경고백이다.
하지만 그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더 큰 절망에 몸서리친다.
문 앞까지 길게 늘어선 손님, 펄펄 뛰어다니는 젊은 종업원들, 초를 다투는 주문과 계산. ‘과연 사무실에 앉아 남에게 지시만 하던 늙은 내가 이 일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절망감에 빠진다.
출근길 전철을 놓쳐 지각할까봐 불편한 몸을 이끌고 뛰어야하고, 혹시라도 상사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그의 처지를 안 옛 친구들이 경원시하는 것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과거는 짧게, 미래는 길게”
스스로 주문을 외워가며 화장실청소, 주문받기, 계산하기, 개점준비, 영업마감, 커피마스터, 에스프레소 바에서 커피만들기 등 단계별로 새로운 도전을 이겨나가는 마이클.
겸손과 인내를 배우며 하나하나 어려움을 극복해낸 마이클은 마침내 성취의 기쁨을 맞보며 바리스타(Barista)가 된다.
“이곳에서 내 인생은 다시 시작됐다.”
미심쩍어 하던 동료들의 신망을 얻어내고 자녀들과도 화해하는 마이클은 늦었지만 가슴으로 인생을 사는 법을 깨달으며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잔잔한 일기처럼 술술 읽히지만 경제 위기의 바람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인생의 화두와 감동은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저자는 63세의 나이에 오만과 편견에 차 있던 껍데기 삶을 벗어 던지고 난생 처음 겸손을 배우며, 진짜 행복이란 무엇인지, 참된 삶의 가치란 무엇인지 자신의 깨달음을 고백한다. 원제는 [How Starbucks Saved My Life].
◇땡큐! 스타벅스 /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이수정 옮김/ 1만2000원/ 288쪽/ 신국변형/ 세종서적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