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김인식(사진) 감독은 11일(한국시간) 취재진과 인터뷰를 위해 선수단 숙소인 피닉스의 위그왬리조트 커피숍에 앉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붉은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평소 붉게 상기된 볼로 ‘빨간볼 감독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심한 감기에 시달려 붉은 볼이 더 붉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예정된 인터뷰라 자리를 잡고 평소처럼 농담을 섞어 취재진을 즐겁게 해주곤 했지만 중간중간 힘들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말을 하는 사이 그의 콧물이 인중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주사라도 한방 맞으면 좋을 것 같은데, 미국은 병원에 가도 주사를 잘 놔주지 않으니….” 힘없는 코맹맹이 소리, 콧물을 훔치는 그의 불편한 오른손이 애처롭게 보입니다. 그 오른손은 2004년 말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절뚝거리는 다리와 함께 아직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비행기 양쪽에서 찬바람이 많이 나오더라고. 제대로 감기에 걸렸나봐.” 9일 일본과의 격전을 치른 뒤 곧바로 밤에 전세기를 타고 미국까지 날아오면서 얻은 감기입니다.
그러나 김성한 수석코치는 다른 해석을 내렸습니다. “감독님이 일본에 콜드게임을 당한 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수들을 모아놓고 0-1로 지나, 0-10으로 지나 1패라고 짧게 말씀하셨지만 그 속이 오죽했겠느냐. 콜드게임 면하자고 투수를 다 투입할 수도 없고. 9일 일본전 이긴 뒤에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감기가 온 모양이다.”
김 감독은 전세기를 타고 오면서 와인 한잔만 마시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답니다. 경기 후 “배가 고프다”고 말했던 김 감독이지만 승무원에게 식사를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사이 잠들고 말았습니다.
김성한 코치에 따르면 9일 일본전에서 1-0 승리가 확정된 뒤 김 감독은 그 자리에서 울었답니다. 코치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포옹을 하는 순간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답니다. 김 코치가 자신의 눈물을 눈치채자 민망했는지 “성한아, 내가 우는데 수석코치는 왜 안 울어?”라고 큰소리를 치더랍니다. 그러면서 서로 가슴이 터지도록 뜨겁게 껴안았습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 콜드게임패가 얼마나 분하게 자리잡았는지, 설욕의 기쁨이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이 되더군요.
잘하면 영웅이지만 못하면 역적이 되는 대표팀 감독 자리. 모두들 ‘독이 든 성배’라며 거절했지만 자신 한몸과의 싸움도 힘겨운 ‘국민감독’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전쟁터에 나섰습니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양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진 채 칼끝에 선 김인식 감독. 그의 콧물과 눈물을 보면서 한국야구는, 아니 대한민국은 참 많은 짐을 그에게 맡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피닉스(미 애리조나주)|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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