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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92년 터키 강진 3000명 사망

입력 | 2009-03-13 02:58:00


“다른 중동나라들은 터키가 지나치게 세속적이라고 비난하곤 해요…제가 보기엔 가장 이슬람다운 국가는 터키예요. 사람들은 자유롭게 행동하고 아무도 종교적인 행동을 강요하지 않죠. 자유롭게 생각하고, 코란을 읽고, 스스로의 상황에 맞게 규율을 지켜요.”

후배 장원재 기자가 대학생 시절인 2004∼2005년, 중동을 여행했을 때 이스탄불대 여학생 에리프 아이테킨이 들려준 말이라고 합니다.(‘인샬라, 그곳에는 초승달이 뜬다’)

터키는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이슬람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단층대가 국토의 동서를 가로질러 대지진이 자주 발생합니다.

1939년 12월 27일 동부 에르진잔 주민 4만5000여 명이 리히터 규모 7.9의 지진으로 숨졌습니다. 1992년 3월 13일에는 리히터 규모 6.2의 지진이 같은 지역을 강타해 3000∼50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999년 8월 17일에는 리히터 규모 7.8의 지진이 일어나 최대 도시 이스탄불, 최대 공업지역 이즈미트 시를 중심으로 희생자가 속출했습니다. 터키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 병력을 동원해 인명구조와 피해복구에 나섰습니다.

동아일보는 8월 26일자 1면에 ‘비탄의 땅 터키를 도웁시다’라는 사고(社告)를 게재하고 임직원 성금 5000만 원을 기탁하는 등 지원에 앞장섰습니다.

“한국민이 6·25전쟁의 고통을 겪을 때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육군 1개여단)을 파견했던 ‘형제의 나라’ 터키가 지진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사망자만 1만8000명을 넘어섰고 아직도 매몰된 희생자가 3만여 명에 이릅니다…우리가 터키 돕기에 발 벗고 나설 때입니다.”

민간단체인 ‘터키의 아픔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 의연금품을 접수하자 개인 기업 학교 지방자치단체가 앞 다퉈 동참했습니다.

동아일보는 8월 26일∼9월 30일 접수한 성금 13억728만7366원을 주한 터키대사관에 전달했습니다. 대사관에 직접 접수된 47만3842달러를 합치면 한국민이 보낸 성금은 150만 달러를 넘습니다. 정부 차원의 지원금은 7만 달러(당시 환율로 8400만 원)였습니다.

한국과 터키는 2002년 한일 월드컵 3, 4위전에서 만납니다. 국민의례 때 관중석에는 대형 터키 국기가 등장했고 ‘붉은 악마’는 태극기와 터키 국기를 힘차게 흔들었습니다.

경기가 끝나자 터키 선수들은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았고 6만여 관중은 “터키, 터키”를 연호했습니다. 전쟁과 지진으로 서로를 도운 두 나라가 축구를 통해 하나가 되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