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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입에 머금고 혀 앞뒤로 돌려 향과 맛 느껴야”

입력 | 2009-03-13 02:58:00


■ 바리스타들이 말하는 음미법

비가 내리던 3월의 어느 날 미국 뉴욕 78번가 길모퉁이에 자리한 스타벅스에서 64세의 백인 남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카페라테 한 잔을 마시고 있다. 카페라테 한 잔은 나이를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난 그에게 얼마 남지 않은 호사 중 하나였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을 추억하며 상념에 잠겨 있던 그에게 젊은 흑인 여성이 말 한마디를 건넨다.

“혹시, 여기서 일하실 생각 없으세요?”

이 남성은 ‘과연 자기한테 묻는 질문인지’ 수초간 빤히 여성을 바라본 후 “예, 일을 하고 싶습니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미국 명문 예일대를 졸업한 후 세계 굴지의 광고회사 임원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엘리트였던 마이클 게이츠 길 씨가 자신이 즐겨 찾던 스타벅스의 말단 파트타임 직원으로 취직해 또 다른 삶을 열어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땡큐! 스타벅스’의 한 구절이다.

즐겨 찾는 커피전문점에서 자신이 주문한 커피를 만들기 위해 능숙한 솜씨로 에스프레소를 뽑아내고 스팀 우유를 만드는 바리스타의 모습에서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두 번쯤은 하게 마련이다.

지난달 24일 우연히 기자에게 아주 잠깐이나마 허리 높이 주문대 너머 바리스타의 숨겨진 공간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날 기자가 스타벅스 남대문점장 이현미 바리스타의 도움을 받아 직접 만들어본 음료는 에스프레소의 씁쓸함과 캐러멜의 달콤함이 묘하게 어우러진 ‘카라멜 마끼야또’.

주문대 너머에서 봤을 때는 바리스타들이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자동기계로 손쉽게 하는 것 같았지만 기자가 직접 해보니 빠른 시간 내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계를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바리스타로 입사해도 수개월이 지나야 직접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수 있다고 한다.

커피 원두가 에스프레소로 추출되며 흘러나오는 샷(shot·커피원액)은 중간에 끊겨서는 안 된다. 에스프레소 위 표면에 커피 원두 오일과 스팀이 합쳐진 크레마의 두께가 3, 4mm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주문이 밀려 있어도 다시 만든다고 한다.

카페라테는 한국인들이 즐겨먹는 메뉴 중 하나. 그래서 우유의 비릿한 맛을 없애주는 스팀 작업을 제대로 해야 한다. 스팀으로 만들어진 우유 거품이 라테의 부드러운 맛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마시는 방법은 어떨까. 이병엽 스타벅스코리아 커피대사(논현점 부점장)는 우선 손으로 커피 잔을 가린 후 ‘후루룩’ 소리를 내며 입 안에 커피를 잠시 머금으라고 조언한다. 입 안에 있는 커피를 혀 앞뒤로 돌려본 후 커피를 넘겨야 커피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충고다.

영화 ‘좋지 아니한가’에 나오는 커피 음용법도 비슷하다.

“첫 모금은 입 안의 잔여물을 없애주지. 두 번째 모금으로 입 안에 향이 퍼지게 한 다음, 세 번째 모금은 코로 향기를 마셔봐.”

매일 수백 잔의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는 과연 하루에 몇 잔의 커피를 마실까. 매장에서 근무할 때는 많게는 3, 4잔을, 집에서 쉬는 날도 2, 3잔 정도는 마신다고 한다. 매장에서처럼 그들도 집에 근사한 에스프레소 자동 기계를 갖추고 있지는 않는다.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 쓰는 기구는 2만 원 안팎에 구입할 수 있는 커피 프레스. 이병엽 커피대사는 “커피 본연의 맛과 특징을 가장 잘 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