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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전문기자의 아하, 이맛!]전주막걸리

입력 | 2009-03-13 02:58:00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스무가지 안주는 공짜

‘입술은 술의 입. 입을 가진 액체는 술밖에 없다. 술은 빨아들인다. 술 마시는 사람은 술 안으로 사라지고 만다. 몸 안으로 들어간 술은 모두 몸 밖으로 입만 내민다. 붉은 입술로 치장하고 있는 취한 사람의 몸’

막걸리 입은 크다. “꿀∼꺽 크르륵!” 목울대 넘어가는 소리. 목젖이 아프다. 막걸리는 둥글게 젖어온다. 소주는 톡톡 쏘며 달려든다. 술은 조금씩 몸에 젖어야 맛있다. 몸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을 때 아득하다.

전주막걸리는 몸에 안겨온다. 쩍쩍 입에 달라붙는다. 전주막걸리 집은 이 골목 저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삼천동 32곳, 서신동 13곳, 경원동 6곳, 평화동 5곳, 효자동 4곳 등 모두 100곳이 넘는다. 하루 팔리는 양은 750mL들이 1만여 통. 한 집 평균 100통 정도 파는 셈이다.

전주막걸리집들은 술값만 받는다. 안주는 아무리 먹어도 공짜다. 막걸리는 3통들이 한 주전자 값이 1만2000원. 기본안주는 보통 20가지가 넘는다. 한상 가득도 모자라 그릇 위에 그릇이 층을 쌓는다. 여기에 막걸리 한 주전자씩 추가할 때마다 특별안주가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다음엔 무슨 안주가 나올까? 술꾼들은 안달한다. “에라, 모르겠다! 한 주전자 더!”

삼천동 두여인(063-221-0271)은 기본안주가 25가지. 해산물이 많은 게 눈에 띈다.

1. 더덕 2. 풋마늘 대 3. 통마늘 장아찌 4. 삶은 콩 5. 삶은 옥수수 6. 날배추 7. 딸기 8.바나나 10.새우소금구이 11.키조개 12. 소라게 발 13. 생굴 14. 삶은 꼬막 15. 삶은 피조개 16.삶은 피문어 17.멍게 18. 도미찜 19. 광어회 20. 깻잎김치 21. 해삼과 해삼창자 22. 조기구이 23. 아구찜 24. 김치찜 25.토종닭미역국

세 번째 주전자를 시키자, 유정란 반숙과 게장, 꽃게찜이 나오더니 광어회도 한줄 더 준다. 계란이 고소하다. 더 마시면 갑오징어와 농어탕이 선보일 것이라는 귀띔. 그 뒤엔 전복이 대기하고 있단다.

평화동 바이전주집(063-222-7821)도 비슷하다. 기본안주에서 생김치, 파김치, 배추 뿌리, 마 뿌리, 생고구마, 가오리찜, 두부김치, 삶은 제육(새우젓) 정도가 다르다. 두 번째 주전자엔 부침개와 탕 등 3,4가지가, 세 번째 주전자에 게장과 김 그리고 밥이 나왔다.

전주대 부근의 서신동 옛촌(063-272-9992)은 젊은 층이 붐비는 곳. 민중가요가 곧잘 울려 퍼진다. 기본안주에 삼계탕, 4번째 주전자에 조기매운탕이 나온다. 그 인근 일번지(063-254-7800)는 요즘 떠오르는 곳이다. 효자동 홍도주막(063-224-3894) 삼천동 용진집(063-225-8114), 사랑채(063-225-5522), 마이산(063-223-0890) 등도 술꾼들 입에 오르내린다.

전주막걸리 집에 가면 술, 친구, 이야기가 있다. 술꾼들은 땅거미가 내리면 달뜨기 시작한다. 단돈 1만 원대에 저녁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다. 안세경 전주부시장은 “요즘은 40, 50대 아주머니들도 막걸리 집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회식을 할 정도로, 전주에서 막걸리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고 말한다.

전주술꾼들은 보통 막걸리 찌꺼기(하얗게 가라앉은 부분)는 먹지 않는다. 윗부분의 ‘맑은 술’만 마신다. 너무 배불러 맛있는 안주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술은 리드미컬하게 마셔야 한다. 마시는 간격이 들숨과 날숨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몸의 리듬에 맞춰야 맛있다. 막걸리는 단숨에 “쭈욱∼” 소리 내어 마셔야 어울린다. 은근슬쩍 한두 방울 턱밑으로 흘리는 거야 애교다. 안주 한점 먹고, 이야기 한점 나누고 또 한잔 “쭈욱∼” 3박자가 막걸리의 기본리듬인 셈이다.

‘막 걸은 술’ 막걸리. 오래된 시골동무처럼 큼큼 텁텁한 술. 막걸리는 오래된 친구와 쭈욱 들이켜야 제격이다. 거기에 곰삭은 전주주막집 안주가 있다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둥둥둥 판소리의 북장단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