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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만 남기고 남편이 가출” 배우자 가출로 인한 이혼 늘어

입력 | 2009-03-13 18:16:00

남녀별 이혼 상담 사유 자료자료 : 한국가정법률 상담소


50대 여성 A씨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 남편 때문에 요즘 이혼을 고려 중이다. 그녀의 남편은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지난해 말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두절됐다. 남편이 남긴 것은 2000만원의 빚과 방안 가득한 로또 용지뿐이다. A씨는 가출 신고를 하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채권자들의 빚 독촉을 견딜 수 없어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

불황으로 집을 나가 버리는 배우자가 늘어나면서 '배우자의 가출'이 주요한 이혼 상담 사유로 떠올랐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2008년 상담통계' 자료에 따르면 배우자의 가출로 인해 이혼 상담을 하는 건수가 지난해 여성은 379명, 남성은 102명으로 2007년 여성 294명, 남성 87명 비해 각각 29%, 17% 늘어났다.

● 남편은 사업 실패, 아내는 카드 빚으로 가출

20대 남성 B씨가 결혼 1년 만에 부부 갈등이 심각해진 것은 아내의 카드 빚 탓이다. 아내가 수백만 원 카드 빚을 지는 바람에 먹고 살기도 빠듯한 형편에 이자만 늘어났다. 아내는 죽고 싶다면서 한바탕 싸움을 한 뒤에 집을 나가버렸다.

대체로 남편은 실직이나 사업 실패 이후, 아내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카드 빚을 진 뒤 집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 가출한 배우자는 연락을 끊어버리기 때문에 남겨진 가족들은 정확한 채무액조차 알지 못한 채 채무 독촉에 시달린다. 이런 불안 상태를 벗어나고자 일방적으로 이혼을 결심하거나 위장이혼을 하게 되는 것. 배우자가 가출한 상태여도 배우자의 부모 등으로부터 소재가 불분명하고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확인서를 받아 제출하면 공시 송달 절차를 거쳐 한쪽이 이혼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이혼 상담 사유 중 가출로 인한 상담 비율이 높은 연령층은 50대 12.3%, 40대 12%, 20대 10.2% 순이었다. 이들 연령층에서는 이혼 상담 10건 중 1건 이상이 배우자의 가출 때문이었다. 또한 남녀 모든 연령층에서 배우자의 가출을 이유로 한 상담이 고르게 증가하여 경제위기가 곧 가족해체 위기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경제적 갈등으로 인한 이혼 상담 늘어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해 서울에서 이뤄진 면접상담 8695건을 분석한 결과, 이혼 상담이 48.2%(4194건)를 차지해 99년 이후 매년 감소하던 이혼 상담이 다시 증가했다. 경제적 갈등으로 부부 사이가 악화되는 경우가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경제적 문제로 상담을 받는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 중 '경제 갈등'으로 인한 상담이 11.4%(153명)로 1위를 차지했다. 다음은 '성격차이' 10.1%(135명), '생활무능력' 7.6%(102명), '빚' 5.5%(73명) 등이었다.

반면 남성의 경우는 '성격차이'로 인한 상담이 22.2%(67명)로 가장 많았고 '배우자의 이혼강요' 14.6%(44명), '장기별거' 8%(24명), '경제갈등' 7.6%(23명)의 순이었다.

'경제갈등'으로 인한 이혼상담은 2005년 7.0%, 2006년 10.2%, 2007년 10.4%, 2008년 11.4%로 해마다 증가하였고, 2008년 4분기에는 3분기 9.7%보다 크게 증가한 16.3%를 기록해 불황의 그늘을 짐작케 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남성들이 가정에 경제 위기가 닥치면 가출 등으로 이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심해졌다"며 "부부가 책임을 방기하지 말고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