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열어 봐”
초등학교 점심시간.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의 도시락을 일일이 살폈다. 선생님은 하얀 쌀밥만 담아 온 학생의 이름을 적었다. 보리쌀을 섞지 않은 도시락은 지적 대상이던 시절이었다. 드문드문 보리쌀을 섞는 게 아니라 쌀과 보리를 7 대 3으로 배분할 것을 장려했다. 학교에선 보리밥을 먹어야 몸이 튼튼해진다고 가르쳤다. 보리를 섞지 않은 쌀밥은 편식으로 간주됐다. 보리밥을 싫어하는 집안의 애들은 도시락 윗부분에만 보리밥을 살짝 얹고 선생님이 알아차릴 수 없도록 아랫부분에는 쌀밥을 싸갖고 오기도 했다.
교실 뒷벽에 붙어 있는 학급 미화 게시판에는 혼·분식을 권장하는 포스터가 내걸렸다. 국수와 빵, 보리밥 그림이 담긴 포스터는 낯익은 모습이었다. 하루 한 끼는 밀가루 음식을 먹자는 범국민적인 캠페인도 벌어졌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줄을 서서 학교에서 나눠주는 밀가루빵을 받았다. 군것질거리가 많지 않던 때 급식빵은 요긴한 간식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제창한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반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이처럼 팔을 걷어붙였다.
1973년 3월 14일 김보현 농수산부(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모든 음식점에 잡곡 혼식률을 20%에서 30%로 올리도록 지시했다. 관광업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동안 양곡상 허가를 받지 않던 군과 읍면 단위의 양곡상도 행정관청에 등록하도록 의무화했다. 아울러 정부가 방출한 양곡을 소비자에게만 팔도록 해 해당 점포 이외의 장소에는 일절 숨기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김 장관은 “정부 행정명령대로 국민이 쌀 소비를 줄인다면 작년보다 약 250만 섬의 쌀을 아낄 수 있어 내년부터는 외국 쌀을 수입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당시 행정명령에는 쌀 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갖가지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중국음식점에서는 밥을 팔 수 없도록 했고 쌀을 주원료로 하는 과자나 엿도 생산 판매를 금지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은 쌀을 먹지 않는 무미일(無米日)로 정하고 국수나 수제비 등 분식을 장려했다. 1등품 밀가루 생산도 금지됐다. 이를 생산 중단할 경우 원맥(原麥) 12만4000t을 줄일 수 있어 1400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다.
도시락 행상 등 무허가 음식업소를 철저히 단속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의 이 같은 행정명령을 어기는 양곡매매업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무허가 음식업소는 3년 이하 징역이나 2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매길 수 있도록 했다.
지금 보면 어느 것 하나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대책이지만 당시 저개발국인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도시락 검사쯤이야 아무 불평 없이 받아들이던 시대였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