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木石이 아니었다. 齊(제)나라에 갔다가 舜(순)임금의 음악인 韶樂(소악)을 듣고는 석 달이나 고기 맛을 잊었다. “이 음악이 이렇게까지 좋은지 미처 몰랐다”고 했으니 소악은 비속한 유행가가 아니라 盡善盡美(진선진미)의 음악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논어’ 述而편에 나오는 그 일화는 같은 述而편의 이 章과 함께, 공자의 정서적 깊이와 넓이를 말해주는 사례로서 매우 유명하다.
子與人歌而善의 子는 공자를 가리킨다. 與는 ∼와 더불어라는 뜻이다. 而는 그런데라는 어조를 나타낸다. 善은 음률에 맞춰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을 말한다. 使는 ∼로 하여금 ∼하게 한다는 뜻이다. 뒤에 ‘함께 노래 부른 그 사람’을 생략했다. 反은 반복한다는 말이다. 之는 그 노래를 지시한다. 而後는 그런 뒤란 뜻이다. 和는 자기도 맞춰 따라 부르는 것을 말한다. 그 뒤의 之는 앞서의 노래를 받는다. 지시 기능 없는 조사로 볼 수도 있다.
공자는 氣象(기상)이 조용하고 온화하며 誠意(성의)가 간절하고 지극했다. 주자(주희)에 따르면 공자가 반드시 다시 노래를 부르게 한 이유는 상세한 속성을 파악하고 좋은 점을 취하려 해서였고, 뒤따라 함께 부른 이유는 상세한 속성을 파악한 것을 기뻐하고 좋은 점을 같이 하려 해서였다고 한다.
조선의 학자들은 이 章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정약용은 말을 길게 늘여서 시를 외는 것이 歌라고 했다. 시가 악곡과 분리되어, 음률에 맞춰 노래 부르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노래 부르는 일은 涵養(함양) 공부의 하나다. 남의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부르는 일은 나와 남의 경계를 허무는 공부가 될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