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회의가 영국 런던에서 열렸다. 66개국이 참가한 회의의 의제는 통화 공조와 무역장벽 철폐였다. 하지만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석 달 전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대서양 저편에서 OK를 해주지 않아서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장 격의 램지 맥도널드 영국 총리를 밤새워 기다리게 하고서야 “미국의 우선순위는 국내 경제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라는 전보를 보냈다. 그의 답은 ‘노(No)’였던 것이다.
▷대공황이 맹위를 떨치던 1933년 6월 런던에서 열린 ‘통화 및 경제 문제에 관한 국제회의’는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은 미국으로선 국제 경쟁력 회복을 위해 달러가치 절하가 절실한 판이었다. 유럽은 분노했고 대공황은 더 길게 이어졌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등이 폭력적 국수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뒤섞은 파시즘으로 치달았다. 우리말로 ‘너 죽고 나 살자’, 서양 속담으론 ‘네 이웃을 거지로 만들라(Beggar-thy-neighbor)’라는 보호주의 뒤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내달 2일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회의가 런던에서 열린다. 이번엔 20개국만 참가하는 G20이다. 호선에 따라 영국이 의장국이 된 까닭에 1세기 만에 한번 올까 말까 하다는 경제위기 극복 회의가 하필 76년 전 ‘실패한 국제경제 협력회의’가 열렸던 런던에서 열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 하락에 고심하는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회의 결론이 ‘너 죽고 나 죽자’로 날지 그 반대일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판이다.
▷현재의 위기가 공황으로 증폭되지 않으려면 G20 회의 성공이 참으로 중요하다. 경기부양책부터 금융체제 정비까지 국제공조는 너무나 절실하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1933년 런던 회의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런 전보를 보내야 했다. “미국의 우선순위는 국제경제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어쩌면 2009년 회의는 그래서 런던에서 열리는지도 모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엔 정확히 말해야 한다. 미국의 우선순위는 자유무역에 기초해 세계경제를 살리는 것이라고.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