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범호(28)는 마음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와이 전지훈련 중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서 최종 엔트리 탈락이 가장 유력한 멤버였기 때문이다.
어깨가 아픈 유격수 박진만의 대체 요원을 뽑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듯 했다.
그 때 김인식 감독이 용단을 내렸다. 팀워크를 위해 하와이 멤버 전원을 데려가겠다고.
이범호가 필요할 날이 올 거라는 김 감독의 믿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회가 시작되자 선발 3루수로 기용된 이대호(롯데)가 수비에서 불안한 면을 보이기 시작했다. 타격에까지 영향을 미칠 만큼 좋지 않았다.
그러자 김 감독은 미리 준비해둔 카드를 꺼냈다. 한 방도 있고 수비도 안정적인 이범호였다.
믿음에는 믿음으로 보답하는 게 정설이다.
이범호는 16일(한국시간)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WBC 2라운드 1조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0-2로 뒤진 2회 추격의 발판을 놓는 좌월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2점을 먼저 빼앗긴 한국팀에 기를 불어넣는 귀중한 한 방이었다.
4타수 3안타 1타점. 수비에서도 그랬다. 일제히 당겨치는 멕시코 타자들의 강한 타구를 안정적인 수비로 막아냈다.
적어도 야구장에서는 ‘꽃보다 범호’가 확실했다.
샌디에이고(미 캘리포니아주)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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