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플 때에 가장 좋은 치유 방법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몸이 자체 회복 능력을 지니고 있어 스스로 낫게 내버려두는 게 가장 좋은 치유 방법이라고 말한다. 반면 병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그로 인한 고통이 크다면 의사의 처방을 받아 회복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도 시장의 자연치유 능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수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는 ‘시장론자’는 경제가 침체 상태에 빠져도 시장의 자연치유 기능으로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반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개입론자’는 경제 주체들이 장기간 실업 상태에 놓여 많은 고통을 겪는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최근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강타하면서 시장의 기능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1929년 대공황을 거치면서 19세기의 자유방임주의가 파산선고를 받은 것처럼 현재의 위기로 20세기 후반의 신(新)자유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예견한다. 이들은 정부 개입을 통해서만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의 위기가 시장의 기능을 믿고 작은 정부를 지향해온 미국식 자본주의에 경종을 울렸다는 것이다. 시장론자와 개입론자 사이에는 역사적으로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다음 글을 읽어 보면 어떤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었는지는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정부지출 늘려 경기부양” vs “시장 회복능력 신뢰해야”
[내용]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한 나라의 경제가 완전 고용에 훨씬 못 미치는 낮은 생산과 높은 실업률 상태에 머무르는 이유가 총수요의 부족에 있다고 역설했다. 케인스는 경기 침체기에 가계가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늘리면 경제의 총수요는 더욱 줄고 침체는 심화된다는 ‘절약의 역설’을 설명했다. 그는 이럴 때는 인위적으로 정부 지출을 늘려 총수요를 확대하는 정책을 펴야 침체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는 스스로 침체 상태에서 빠져나온다고 주장하는 당시의 고전파 경제학자들에게 케인스는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말로 응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1973년까지 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은 4반세기에 걸쳐 완전 고용 상태를 지속하고 그 기간에 실질경제 성장률은 평균 4.8%에 이르는 장기 호황을 경험했다. 이 수치는 1890년부터 1950년까지 평균 성장률의 2배를 웃도는 대단한 기록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선진국 경제는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케인스의 경제학 속에서 이에 대한 마땅한 정책 처방을 찾지 못했다.
일부 경제학자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질병이 케인스의 개입주의와 그로 인한 정부의 비대, 시장기능의 저하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정부 역할의 축소, 시장 기능의 회복으로 이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케인스 경제학이 세계를 풍미하고 있을 때 조용하게 엎드려 있던 고전파 경제학은 새로이 부활의 날개를 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경제교육학회 편,
‘차세대 고등학교 경제’, 333쪽
[이해]
시장론자는 정부 개입이 오히려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우선 정부 정책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데까지는 시차가 존재한다고 봤다. 정부 지출이나 세금의 변동으로 경기를 조절하는 재정정책은 법안이 통과되고 집행되기까지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에 경제상황이 변하면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경기변동의 폭을 크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의사의 처방을 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몸은 이미 나았는데도 뒤늦게 약을 복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정책 담당자가 전지전능하지 않을뿐더러 주어진 권력을 남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정책 담당자들의 판단이 틀리면 적절하지 않은 정책이 집행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등 정치적인 일정에 따라 정책이 입안될 수도 있다. 이렇게 경기가 정치적인 일정에 따라 변동하는 것을 ‘정치적인 경기순환’이라고 부른다.
개입론자는 정부의 개입으로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시장론자와 달리 시장의 조정이 불완전하며 느리다고 생각한다. 경제가 침체에서 회복되는 과정이 더디다면 사람들은 실업에 따른 고통을 오랫동안 겪게 될 것이다.
케인스가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경구와 함께 단기적인 정책적 대응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들은 정부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올바른 정책의 방향을 판단할 수 있고, 그 정책 수단을 운용하는 지식도 갖고 있기 때문에 정책을 수행하여 경기변동에 따른 고통을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심각한 질병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기보다는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야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의 오류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경 호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
정리=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