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정채봉 씨(왼쪽)와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모습. 추기경의 성장 시절 이야기를 다룬 정 작가의 ‘바보 별님’은 선종 뒤 출간해 달라는 추기경의 부탁에 따라 작가 사후 8년 만에 출간됐다. 사진 제공 정채봉 작가 유족
“어머니만 아니라면 독립운동”
‘소년 김수환’의 모습 생생히
동화작가 정채봉(1946∼2001)이 쓴 김수환 추기경의 성장기 ‘바보 별님’(솔)이 작가 사후 8년 만에 출간됐다.
1993년 5∼8월 한 어린이 신문에 ‘저 산 너머’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작품으로 김 추기경의 뜻에 따라 선종 후 출간됐다.
정 작가의 부인 김순희 씨(58)는 17일 “연재가 끝난 뒤 바로 책으로 내려고 했지만 추기경께서 남 보기 부끄럽고 민망하니 당신이 가고 난 뒤 출간하라고 만류하셨다”며 “추기경께서 종종 전화를 주시며 ‘매일 연재를 기다리고 있다’ ‘위인도 아니고 예쁘지도 않은 사람을 너무 예쁘게 그려줘서 부끄럽다’는 말씀을 전해오곤 하셨다”고 말했다.
생전에 가톨릭 신자로 평소에도 김 추기경을 깊이 흠모했다는 정 작가는 연재 때 쓴 서문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감히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분이 걸어오신 길을 글로 따르다 보면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에게 용기의 씨앗, 희망의 씨앗, 정의의 씨앗, 그리고 빛의 씨앗을 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서”라고 말했다.
책은 병인박해로 순교한 김 추기경의 할아버지 이야기부터 군위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1부와 성유스티노신학교 시절부터 1993년까지를 다룬 2부로 나눠진다. 1부는 3인칭 시점에서 주인공 ‘막내’(김 추기경)의 이야기를 서정적인 문체로 그려나갔으며 2부에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김 추기경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형식이다.
나라 잃은 슬픔을 맛봐야 했던 당시 “무엇 때문에 공부하니?”란 선생님의 질문에 “주권을 찾고 싶다”고 대답하거나,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신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도 ‘어머니만 아니라면 만주벌판을 달리는 독립운동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 김 추기경의 모습도 생생히 그렸다.
연재 당시 작가는 김 추기경과 함께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경북 군위의 옛 마을과 집, 초등학교를 직접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후에도 김 추기경의 집무실을 드나들면서 성장 이야기를 취재했다.
부인 김 씨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훼손되지 않도록 직접 듣고 말하신 것을 바탕으로 집필했기 때문에 두 분이 함께 쓰신 글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