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편성을 놓고 논란이 많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를 급격하게 위축시키며 일자리가 줄어들고 서민의 삶의 뿌리가 흔들리기 때문에 추경은 반드시 필요하다. 추경 편성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으나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R&D) 지원 논의가 소홀하다. 연구개발의 중요성에 대한 예산당국의 인식부재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생안정과 단기적 일자리 창출이 이번 추경의 키워드인 점은 분명하지만 중장기적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한 연구개발 투자는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인이다. 다른 나라보다 차별화된 역량을 키워나감으로써 현재의 경제 불황을 돌파하고 산업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경제회복 예산의 6.3%를 청정에너지 개발 등 과학기술 관련 예산에 투입하고 있고 일본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기술개발 투자 확대 전략에 따라 환경 및 에너지기술 등 녹색기술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이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 청정에너지 개발, 환경보호 기술 등 녹색기술 개발에 투자를 확대하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기업의 70%만이 연구개발 과제를 당초 계획대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미래 산업경쟁력을 좌우할 원천기술 기반인 대학 및 출연연구소와 공동연구 중인 기업의 기초연구 과제와 중장기 연구과제는 50% 이상 투자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전망이 현실화되어 원천·기초연구의 위축과 부실화를 불러온다면 결국 우리의 성장잠재력을 고갈시키고 포스트 신자유주의 세계경제 체제 이후 전개될 녹색경제 체제에 대응할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현재 정부와 국회가 논의하는 추경 예산안에는 연구개발 비중이 턱없이 부족하고 관련 정책도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추경 예산 30조 원 중에 연구개발 투자 예산은 1%대 규모다. 정부예산 중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5% 수준임을 감안하여 추경 예산에서도 5% 수준(1조5000억 원)까지 과학기술 분야 투자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특히 강점을 가진 정보통신과 나노기술이 결합한 첨단 융복합 우주기술, 중소형원자로(SMART) 개발과 원자력 폐기물 재활용 등 거대 과학 분야, 줄기세포 분야 연구 등 고부가가치 첨단과학기술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예산지원이 필요하다. 원자력기술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상태로 한국형 원전, 연구용 원자로, 스마트(SMART) 중소형 원자로 등의 개발에 따라 해외 수출이 가능한 부문이고 최근 성과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당장 현실이 어렵다고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아무리 춘궁기라도 농부가 새봄에 파종할 볍씨를 양식으로 먹지는 않듯이 국가경쟁력의 원천인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을 멈출 수 없다.
외환위기 상황에서도 연구개발 투자의 끈을 놓지 않고 원천기술 확보와 전문인력 양성에 투자한 기업이 위기 극복의 주역이었으며 현재 세계시장을 선도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LG그룹이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미래 글로벌시장의 리더로 도약하기 위해 올해 연구개발 투자 비중을 전년 대비 25% 확대한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는 내용의 ‘대통령 명령’을 발표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도가 과학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산업의 창출과 주도권 확보에 있음을 상기할 때 포스트 신자유주의시대에 우리의 전략적 선택은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박영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