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49, 반대 35. 1920년 3월 19일 밤, 표결 결과를 확인한 미국 상원의원들은 하나같이 왠지 모를 찜찜함 속에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표결에 부쳐진 안건은 제1차 세계대전을 종결하는 베르사유평화조약 비준동의 수정안. 상원을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3분의 2 찬성에는 7표가 모자랐다. 이로써 토머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그토록 원했던 미국의 국제연맹 가입은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수정안 대표발의자인 공화당의 헨리 캐벗 로지 상원의원은 “(구두쇠 스크루지의 죽은 동업자) 말리의 유령처럼 분명히 죽었다”고 국제연맹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렸다. 민주당의 제임스 리드 상원의원도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처럼 죽은 게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수정안은 군사적 개입이 요구되는 위기 상황을 의회가 평가할 권한이 보장되면 국제연맹 가입을 승인하겠다는 유보 조항을 넣은 것. 세계 어디든 침략행위가 일어날 때마다 미국이 무턱대고 침략자를 응징하러 전쟁에 나설 수는 없다는 공화당 ‘강경 유보파’의 대안이었다.
그러나 윌슨은 이 수정안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파리평화협상에서 만들어낸 원안이 이미 4개월 전 의회 표결에서 부결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 있게 국제연맹에 가입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품위 있게 퇴장해야 한다”며 한 글자도 건드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반대표 중 23표는 윌슨의 지시에 따른 민주당 표였다. 세 차례나 발작을 일으켜 몸 왼쪽이 마비된 윌슨은 정신건강, 즉 판단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그는 병상에서 심하게 떨려 거의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민주당 의원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라고 간청했다.
이 수정안에 따라 미국이 국제연맹에 가입했다면 패전국 독일은 이후 국제법 절차에 따라 불만을 해소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독일은 허울만 남은 국제연맹을 무시하며 무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고 결국 유럽에선 또 한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수정안의 부결은 국내적으로도 윌슨과 민주당의 자멸로 이어졌다. 한때 윌슨의 국제연맹 구상에 호의를 보이던 공화당 의원들도 등을 돌렸다. 그해 말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완패는 곧 윌슨의 대외정책에 대한 완전한 반대를 의미했다.
당시 사회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던 유진 데브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미국 역사에서 공인 가운데 우드로 윌슨만큼 철저히 신뢰를 잃고, 호되게 비난받고, 압도적인 거부와 반대에 부닥친 채 은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폴 존슨의 ‘모던 타임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