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최고의 풍광 알제리 티미문 드라이빙
‘검은 대륙 아프리카’. 묘한 매력을 풍기는 특별한 곳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리라. TV시리즈 ‘동물의 왕국’에서 익히 보아온 아프리카 대초원의 사파리투어,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 전편에 흐르던 사바나 초원의 낭만, 먼지바람 일으키며 사막과 황무지를 질주하는 파리다카르 랠리, 인도양과 대서양 이 두 대양이 만나는 대륙남단 희망봉(남아공)에 녹아든 대항해 시대의 장대한 역사 등….
내게는 꿈이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을 자동차로 달리는 것이었다. 아프리카는 북미와 다르다. 각국 간 반목이 심해 월경이 쉽기 않고 내전과 부족 갈등으로 위험도 크다. 테러위험마저 도사린다. 그래서 냉큼 핸들을 잡을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단 한번,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안전하다는 대서양변의 나미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 북쪽)에서 자동차여행을 해봤다. 6박 7일간 BMW의 X5로 나미브사막과 황무지, 산악을 달리며 운전기술을 배우는 ‘BMW X5 드라이브 트레이닝 투어’(BMW 주최)였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 사막주행의 희열. 그것은 미 대륙 종횡단(30일 소요) 때와는 달랐다. 끝없이 펼쳐진 에르그(Erg·사구가 파상으로 이어지는 광대한 모래사막)에서 느꼈던 찬란한 고독, 플라멩코(새) 수십만 마리가 지평선까지 펼쳐진 모래개펄을 뒤덮은 월피스베이(대서양변)의 하얀 침묵, 마치 괴물처럼 시시때때로 모습을 바꾸며 사막의 포장도로를 슬금슬금 덮어 길을 지워버리는 사막모래바람의 황색 공포….
그 멋진 추억을 되새기며 이번에는 북아프리카 알제리를 찾았다. 이번에는 사하라사막을 달려보기 위해서다. 알제리는 지중해변의 이슬람 사회주의 국가로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했다. 1990년대 발발한 내전은 삭아들었다. 그러나 테러위험은 여전하다. 그래서 여행지로는 적합지 않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현지 분위기는 듣던 것과 좀 달랐다. 체제는 자본주의를 지향하고 테러도 위험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줄고 있었다. 그 덕분에 관광도 다른 산업과 더불어 기지개를 켜는 중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드골공항. 에어프랑스기는 2시간 15분 만에 알제리 수도 알제에 착륙했다. 지중해의 파란 물빛과 언덕배기의 하얀 건물이 하늘 아래 이룬 대비가 멋진 항구도시였다.
내 최종 목적지는 사하라의 오아시스 가운데 하나인 티미문(아드라르 주)이라는 타운. 아프리카 지도를 펼쳤다가 깜짝 놀랐다. 알제리 국토의 80%가량이 사하라여서다. 아니 아프리카 대륙의 중심부가 거의 다 사하라였다. 그 크기(900만 km²)는 유럽대륙 혹은 미국만 하다. 그 사하라는 아랍어로 ‘몹쓸 땅’이다. 북극, 남극에 이어 지구상에서 세 번째로 큰 몹쓸 땅인데 사막 가운데서는 가장 크다. 이 사하라를 열한 나라가 나누었다. 이곳 사람들은 말한다. 알제리의 사하라, 거기서도 티미문의 에르그 풍광이 사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풍광이라고.
알제공항에서 국영 에어알제리를 탔다. 출발은 3시간이나 지연됐다. 그런데 아무도 불평 한마디 않는다. 워낙에 다반사여서다. ‘에어 메이비’(Air Maybe·뜰지 안 뜰지 모른다는 의미)라는 별명 그대로다. 티미문은 ‘그랜드 에르그 옥시덴털’(서부대사구)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에르그의 관문. 에르그는 사하라사막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이튿날 아침. 호텔 테라스에 올랐다. 광대한 에르그가 지평선을 이룬 풍경이 거침없이 내 앞에 펼쳐졌다. 지척의 사막은 눈이 내린 듯 하얗다. 말라버린 염호(鹽湖) 바닥의 소금이다. 내가 묵은 국영호텔 구라라는 티미문 타운의 외곽에 있는데 언덕 아래로 온통 종려나무의 녹색 숲이 펼쳐졌다. 그 숲 속은 천국이다. 땅속 도관으로 맑은 물이 쉼 없이 흐르고 작은 연못도 보인다. 그렇다. 오아시스다. 티미문은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타운이다.
사막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몹쓸 땅’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존재한다. 대수층에 저장된 엄청난 지하수 덕분인데 그 물이 촉촉이 오아시스를 만든다. 종려나무는 그 물로 자라 숲을 이룬다. 더불어 새들과 사람, 동물과 곤충이 예서 공존한다.
물은 사람을 불러들인다. 티미문도 그렇게 형성됐다. 시장은 사막일지라도 어디에서나처럼 활기차고 북적댄다. 깜짝 놀랐다. 없는 게 없어서다. 온갖 채소에 과일, 고기, 공산품. 술만 빼고 다 있다. 티미문은 이곳 아드라르 주에서도 큰 도시다. 공항까지 끼고 있다. 한때는 아프리카 최대국가 수단을 오가는 카라반의 대상로 도시였다. 도시 대로변에 남아 있는 ‘수단 게이트’가 그 흔적이다.
오전 9시. 티미문 시내는 활기에 넘쳤다. 단 하나뿐인 대로 주변은 사람들로 붐볐고 도로는 오가는 차량으로 부산했다.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사막으로 나를 데려다 준 차량은 닛산의 전설적인 사륜구동차량 패트롤(Patrol)이었다. 하도 낡아 제작연도를 알 수 없었다. 번호판으로 짐작건대 1989년형쯤 되는 듯했다. ‘사막의 강자’ 닛산 패트롤은 여기서 한 시간 거리의 오아시스타운 이그제르를 향해 힘차게 도로를 달렸다.
1951년 세상에 나온 이 차. 랜드 크루저(도요타)와 더불어 험로주행의 양대 산맥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그 성가를 얻었다. 주로 아시아와 중동국가에서 군용으로 애용됐다. 인도육군의 ‘종가(Jonga)’가 그 예다. 1964년부터 기관총 장착용 군용 경트럭으로 인도에서 라이선스 생산됐다. 지금도 인도의 고산도시인 다르질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히말라야로 떠나는 관광객 수송차량의 대종을 이룬다.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에도 있다. 2004년 평화유지군으로 온 아이슬란드 군이 경트럭으로 이용한다.
사막에서는 어떤 차도 오래가지 못한다. 모래 때문이다. 그래서 내구성이 관건이다.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도 사막에서 20년을 버틴 것은 ‘기적’이다. ‘신의 손’을 가진 정비사, 강철에 비견될 강력한 내구성이 없다면 이룰 수 없는 초능력의 범주다.
사막에서 늙어온 티미문의 닛산 패트롤. 그런데도 달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엔진소리도 조용했고 힘도 떨어지지 않았다.
주변 도시를 잇는 길은 모두 아스팔트 도로다. 거리는 30분 혹은 한 시간 정도. 마을 주변은 온통 황무지 아니면 에르그. 틈틈이 사구로 들어가는데 그때마다 짜릿한 사구 드라이빙을 즐긴다. 지형은 모두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드라마틱하다. 그런 사구에서도 티미문의 운전자는 바퀴에서 바람도 빼지 않고 다닌다. 사구에서는 타이어 공기압을 25%가량 줄여야 한다. 접지면을 넓혀 모래밭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잘 달릴 수 있는 비결은 딱 하나. 바람에 의해 수시로 바뀌는 사구의 성격(단단하거나 부드럽거나)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사막에서 태어나 모래바람 속에서 자란 티미문 사람에게 그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단조롭게 보일 수 있는 사막투어.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사막의 경이로운 풍광 덕분이다. 놀라움과 감탄의 연속이다. 어머니 지구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사막 보다 더 좋은 곳이 과연 있을지. 사막에 가면 누구든 이런 내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사막을 두루 섭렵할 수 있도록 도와준 닛산 패트롤 같은 튼튼한 차량. 그 기술과 노력에도 경의를 표한다.
티미문=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여행 정보|
◆ 찾아가기 ▽항공: 파리∼알제 에어프랑스 이용. 2시간 15분소요. ▽카페리: 마르세유(프랑스)∼알제 20시간 소요. 180달러부터.
◆ 현지 정보 ▽입국 비자: 주한알제리대사관에서 사전에 발급받아야 한다. ▽언어: 프랑스어. ▽통화: 디나르(DA). 1DA는 20원가량. ◇식음료: 바게트(빵)와 버터, 샐러드와 와인 등 프랑스 스타일. ▽식사: 점심이 20DA 정도. 고급 레스토랑의 디너는 2000DA(4만 원). 양고기는 냄새가 없어 권할 만하다. 차는 설탕을 듬뿍 넣어 뜨겁게 내는 홍차와 민트차, 커피가 주종. ▽음주: 이슬람 국가지만 와인 생산지. 정해진 식당에서 마신다. 싸고 좋은 와인이 많다.
◆ 예약 ▽에어알제리: www.airalgerie.dz ▽숙소 △알제: 호텔 오라시 www.el-aurassi.dz △티미문: 호텔 구라라 049-90-44-51, 팩스 049-90-02-62, hotelgourara@hotmail.net ▽현지여행사: www.timgad-voyag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