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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

입력 | 2009-03-19 13:43:00


제4부 나는 후회하지 않고, 아파하지 않고, 울지도 않으리

제12장 격투와 애완 사이

[로봇격투기 대회 '배틀원 2049' 개막]

뚜 뚜 뚜 뚜우우!

저녁 8시 보노보 프라임 뉴스가 시작되자, 메인 로봇앵커 앨리슨 쿠퍼가 로봇격투기 대회 '배틀원 2049'의 개막을 첫 소식으로 전했다.

"2049년 6월 25일 저녁 8시 보노보 프라임 뉴스를 전해드립니다. 오늘 드디어 지난 1년간 기다려온 '배틀원 2049'가 개막됐습니다. 이 시각 현재 스포츠전문 아나운서 크로스가 상암동 격투기 전용 경기장에 나가 있습니다. 현장을 연결해 보도록 하죠. 크로스 아나운서?"

"네,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오전에 개막식이 열렸던 상암동 격투기 전용 경기장 메인 스타디움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드디어! 많은 로봇들과 인간들이 함께 기다려온 '배틀원 2049' 로봇 격투기 대회가 시작됐습니다. 로봇공학기술의 발달과 로봇과 인간의 대화합을 위해 마련된 역사적인 로봇 격투기 대회 '배틀원 2049'가 그 화려한 막을 열었는데요, 이곳 현장은 수많은 관객과 로봇격투기 대회 참가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세계 여러 도시에서 온 로봇 팀만 해도 무려 이천여 명이나 되구요, 이 대회를 현장에서 관람하려고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서울특별시 관광청 추산 현재 약 6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로봇이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관용적인 표현을 쓴 것일까, 정말로 그렇게 느낀 것일까? 속사포 중계로 유명한 크로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부산스러웠다.

"크로스 아나운서, 올해 개막식은 무척 화려했지요? 개막식 소식부터 전해주세요."

"네, 그렇습니다. 올해 배틀원 개막식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성대한 볼거리가 많았는데요, 그것은 서울특별시가 전폭적으로 후원하고, 저희 보노보 방송국이 최첨단 설비들을 지원하고 중계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다채로운 색상과 개성 넘친 캐릭터를 뽐내는 로봇들이 우아하면서도 정교한 군무를 보여주는 대목에선 관객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장관도 연출됐습니다. 그리고 천 명으로 구성된 로봇 오케스트라 '로보 말러'의 연주 또한 굉장히 웅장하고 훌륭했습니다. 개막식 하이라이트는 뉴스가 끝나는 9시부터 자세한 해설과 함께 다시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지요. 오늘 오전 개막식이 끝나자마자, 로봇 참가팀들은 곧바로 경기에 들어갔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개인전 경량급 1회전과 단체전 경량급 1회전, 그리고 데스 매치 32강전이 오늘 일제히 열렸습니다. 개인전과 단체전에서는 작년에 출전했던 팀들이 기량을 높여 1회전을 치렀는데요, 아직은 이렇다 할 이변 없이 순조롭게 출발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로 7000'이란 로봇이 잘 생긴 외모 덕분에 많은 관중의 환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경기는 '데스 매치'가 아닐까 싶은데요, 오늘 하루만에 32강전이 모두 치러졌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배틀원 2049'의 꽃은 단연 '데스 매치'입니다. 관객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대회 주최 측에서는 특별히 개막 첫날 32강전을 일제히 갖기로 이미 발표를 했었습니다. 올해 초 상암동에 로봇격투기 전용 경기장이 생긴 덕분인데요, 이렇게 많은 경기를 한꺼번에 치를 수 있다는 사실에 다른 특별시 기자들이 모두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크로스가 '흥분 모드'의 강도를 높인 듯, 목소리 톤이 점점 더 올라갔다.

"이번에 데스 매치에 출전한 로봇들을 소개해 주시지요."

"네, 32개 팀이 본선에 참가했습니다. 작년의 우승팀 슈타이거를 비롯해 무사시, 졸리 더 퀸 등 전 세계 내노라하는 격투기 로봇들이 모두 출전해 관람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이번 대회에 처음 출전하는 로봇 팀들도 있는데요, 특히 닥터 루스벨트나 메탈릭 신센구미, R-AURA 6000 등은 신생팀이면서도 격투기술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어, 이번 대회의 다크호스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닥터 루스벨트요? 만화 에 나온 캐릭터 아닌가요? 로봇들의 이름이 아주 재미있게 들리는데요, 이번 기회에 출전한 로봇들의 이름이 어떻게 붙여진 건지 소개해 주시지요."

"아, 네, 로봇들의 이름이 모두 재미있어서, 이번 대회를 관람하는 또다른 재미가 될 것 같은데요, 이곳 현장에서는 관람객들에게 '32개 로봇 이름의 기원'을 묻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32개 로봇 이름의 기원을 모두 맞춘 분께는 가정용 로봇 RX4600을 부상으로 드리기 때문에 제가 답을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만, 힌트를 드리자면, 휴머노이드 로봇의 원조인 옛날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영화에 등장했던 로봇의 이름을 살짝 바꾼 경우도 있고요, 전설의 격투기 선수와 프로 레슬러, 그리고 각 도시의 유명한 싸움꾼들 이름이나 과거 로봇 격투기 대회 우승로봇의 이름을 패러디한 경우도 보입니다. 물론 로봇 기술의 약어를 딴 전형적인 '관습 이름'도 보이네요."

"아, 그렇군요. 많은 분들이 32개 로봇 이름의 기원을 모두 맞춰서 푸짐한 상품들 많이 받아 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는데요, 간단히 32강 경기 결과를 소개해 주시지요."

"네, 오늘 치러진 32강 대회는 한마디로 '이변은 없었다'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자들과 도박사들이 매긴 우승확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기 결과가 나왔는데요, 작년 우승팀인 슈타이거를 비롯해, 무사시, 졸리 더 퀸, 달타니어스 7000, R-AURA 6000, M-ALI, 카라데 마스터, 자이언트 바바 III, 글라슈트, 풀메탈패닉 K, 아이언 반달레이, 라이징 브라이거, 닥터 루스벨트, 밴너 사바테 5, 메탈릭 신센구미, SRX 9000 등이 무사히 32강을 통과해 16강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팀일수록 힘을 빼지 않고 가벼운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인상이었습니다. 이제 16강부터는 '로봇 수리'를 위해 3일 간격으로 경기가 열리는데요, 이번 대회 주관방송사인 저희 보노보에서는 모든 경기를 생중계하면서, 깊이 있는 해설과 함께 알찬 방송 보내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로봇격투기 중계는 보. 노.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