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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둑의 세계제패 신화를 재연하는 한국야구

입력 | 2009-03-19 17:33:00

한국 야구는 적어도 대표급 게임에 있어서는 힘이나 기술면에서 일본을 완벽하게 따라잡은 것으로 평가 받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한 결과다. 연합뉴스

한국 바둑은 선배인 일본을 극복하면서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라섰다 2005년 한국바독 60돌 기념식장에서 이창호 조훈현 김인 9단(왼쪽부터). 연합뉴스


WBC에서 한국야구의 연전연승을 지켜보는 한국기원 관계자들은 "한국 야구의 기적에서 일종의 데자뷰(기시감)를 느낀다"고 말한다. 한국바둑의 세계제패 과정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는 얘기다.

●닮은 꼴 ① : 일본을 배우다

바둑의 기원은 중국이지만 꽃피운 곳은 일본이다. 야구는 종주국 미국에서 가장 성행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야구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고 꽃피운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고등학교 야구팀만 4200개에 이를 정도(한국은 50여개)로 야구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만한 국가다.

한국의 바둑 영재들에게 일본 유학은 필수 코스였다. 1세대인 조남철 국수를 비롯해 2세대인 김인, 윤기현 9단과 불세출의 천재 조훈현 국수는 어린 나이에 현해탄을 건넜다.

한국 야구도 재일교포를 통해 선진 기술을 받아들였다. SK 김성근 감독과 김영덕 전 빙그레 감독, 김일융, 장명부 등이 재일교포 지도자와 선수다.

●닮은 꼴 ② : 극일(克日)

최근까지만 해도 일본은 바둑과 야구에서 한국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기원은 1980년대 후반 한국을 제쳐놓고 중일 슈퍼대항전을 만들었다. 1988년 창설된 대만의 잉창치배는 세계 16명의 고수를 초청하면서 한국에선 조훈현만 불렀다. 그러나 조 국수는 일본 기사들을 잇달아 꺽은 뒤 결승에서 당시 최강이었던 중국의 네웨이핑 9단마저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바둑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1991년 시작된 한일 슈퍼게임은 한국 대표팀이 일본 프로 단일팀의 1.5군에도 쩔쩔매자 1999년 3회 대회를 끝으로 폐지됐다. 그러나 한국 야구는 선동렬(전 주니치)-구대성(전 오릭스)-이승엽(요미우리)으로 이어지는 일본 진출 선수의 성공을 바탕으로 극일의 기틀을 마련했다.

●닮은꼴 ③ : 빠른 세대교체

한국 바둑은 빠른 세대교체를 통해 일본을 추월했다. 일본은 고바야시 고이치, 오오다케 히데오, 조치훈 이후 슈퍼스타 발굴에 실패했다. 반면 한국에선 '조(훈현)-서(봉수) 시대' 이후 이창호 이세돌이 뒤를 이었고 최근에는 10대 천재 기사의 탄생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한국 야구도 빠른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이번 대표팀의 주축 투수인 김광현(SK), 류현진(한화), 윤석민(KIA) 등은 이제 갓 20세를 넘긴 신예들이다.

●닮은꼴 ④ : 실전 위주의 한국류(流) 창조

일본 바둑은 정석과 미학으로 요약된다. 바둑을 예술로 승화시켜 형식미와 절제미를 강조해온 결과다. 반면 한국 바둑은 순장바둑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시작부터 난전을 벌이지만 결코 실리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전투적이면서도 실용적이다.

일본 야구는 스몰 볼이다. 치밀하고 섬세하다. 반면 한국은 일본의 스몰 볼과 미국의 빅 볼의 장점을 받아들였다. 홈런포와 단단한 마운드, 빠른 발을 두루 갖췄다.

●닮은꼴 ⑤ : 철저한 국가관

바둑은 개인 스포츠이지만 국가대항전도 있다. 5명이 한 팀을 이뤄 연승방식으로 진행되는 농심배 세계대회다. 2000년부터 10번 열리는 동안 한국은 8번을 우승하며 일본과 중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야구 역시 태극마크만 달면 강해진다. 선수들은 '대~한민국'의 구호 아래 일사분란하게 결집한다. 올림픽 금메달과 WBC 2회 연속 4강 신화는 이렇게 이뤄졌다.

정호재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