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2001∼2006년 하버드대 총장을 지냈다. 그는 28세에 하버드대 역사상 최연소로 테뉴어(정년보장)를 받은 탁월한 경제학자였다. 그러나 여성 차별 발언에 휘말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총장직을 사퇴했다. 총장 재직 중 가장 큰 공적은 30년간 변치 않았던 하버드대 교양과정을 개편한 일이었다. 첨단기술과 신지식이 쏟아져 나온 시기에 그가 택한 방식은 ‘인문학으로의 회귀’였다.
▷미국과 유럽 대학들은 학부에선 교양과목을 강조한다. 미국에선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과 수학 물리 화학 생물 등 자연과학을 집중 교육하는 리버럴 아츠 칼리지(교양학부 대학)가 228곳이나 된다. 전문교육이나 직업교육은 로스쿨 메디컬스쿨 저널리즘스쿨 또는 경영학석사(MBA) 과정 같은 대학원에서 담당한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대학의 고유한 역할인 교양교육을 홀대하게 된 것은 산업화에 필요한 기술 실용학문에 대한 국가적 요구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신학기를 맞아 최소 수강인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의 비인기 학과들이 간판을 내리고 있다. 폐강(閉講)의 비운을 맞은 강좌 대부분이 인문 자연과학 과목이다. 고려대와 연세대 폐강 과목의 46%는 문·사·철 과목이었다. ‘나노기술의 이해’(서울대) 등 기초과학 과목의 폐강률도 높았다. 학문 연마보다는 당장 취업이 급한 대학생들에게 이런 기초학문 수강이 한가롭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근본적인 무엇’을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돈을 잘 벌고 직업 안정성이 높은 학문이 인기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위대한 최고경영자(CEO) 다수가 독서광이거나 인문학에 빠져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세기 최고의 창의적 경영자인 애플의 스티븐 잡스가 “소크라테스와 점심식사를 할 수 있으면 우리 회사의 모든 것을 걸겠다”고 말한 것은 경영이 곧 사람을 대상으로 한 고도의 철학적 행위라는 생각의 반영 같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를 쓴 일본 논평저술가 다카바나 다카시는 “현대의 교양은 자연과학”이라고 강조했다. 수·물·화·생과 문·사·철을 살려야 할 텐데.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