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에라주리즈의 카를로스 드 카를로스 마케팅 총괄이사와 새 와인 2종을 시음할 기회가 있었다. 에라주리즈는 ‘베를린 테이스팅’을 통해 보르도 그랑 크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품질을 인정받은 칠레 와이너리. 세냐, 돈 막시미아노 등으로 국내에서도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날 그가 선보인 와인은 아직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카이(2006)’와 ‘에라주리즈 싱글 빈야드 소비뇽 블랑(2008)’. 카이는 결론부터 말하면 ‘엑설런트’한 맛을 선사했다. 보르도에서 넘어와 칠레 대표 품종으로 자리 잡은 카르미네르로 만든 이 와인은 응축감이 입 안을 행복하게 만든다. 초콜릿의 깊은 아로마와 과일의 한껏 농축된 맛은 루비 빛 액체를 통해 마치 놀이공원에서 하늘을 향해 동시에 솟아오르는 수백 개의 풍선처럼 발산됐다. 카를로스 총괄이사는 “충분한 강수량과 포도가 성숙할 때까지 최대한 기다려 수확한 게 이 같은 집약적인 맛을 만들었다”고 흐뭇해한다.
카이는 연간 6000병 밖에 생산하지 않는단다. 희소성의 측면 또한 이 와인에 대한 호감도를 증대했다. 한번 맛 본 사람이라면 꼭 다시 한번 코르크를 따고 싶으리라. 반면 에라주리즈 싱글 빈야드 소비뇽 블랑은 가격 대비 다소 아쉬웠다. 언덕 구릉의 만자나 포도원에 자리 잡고, 뉴질랜드 컨설턴트의 자문을 구해 탄생한 이 와인은 단맛이 처음부터 입 안에 감기는 캐릭터에 산도 또한 힘 있게 퍼진다. 그런데 단미와 산도의 균형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단맛의 힘이 뒤에까지 치고 올라와 불안해진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판매한다고 하는데, 대중성 면에서는 오히려 뉴질랜드의 ‘빌라 마리아 소비뇽 블랑’이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길상 기자juna1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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