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얼리 어댑터와 거리가 먼 인간형이다. 출시되는 족족 ‘얼리 바잉(Early Buying)’할 만큼 돈도 없거니와 어떤 제품이 나왔는지 ‘얼리 노잉(Early Knowing)’할 만큼 기민한 성격도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늦음의 유용함이 인생살이에도 적용된다. 영화감독 김지운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정확히 10년 동안 ‘방바닥과 친구 사이’로 지냈다. 백수였다는 말이다. 친구들은 10년 전에 취직했으니 그들보다 10년 늦은 인생을 산 셈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책에서 “시나리오를 빨리 쓰는 편이다…백수 때 많이 보고 잘 놀고 10년간 받아들이기만 하고 한 번도 쏟지 않았던 어떤 것이 무진장한 창작욕구가 되었고, 지금 영화감독이 되어 한번에 마구 쏟아져 나오는 거란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한비야 씨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대학도 늦게 들어가고 취직도 늦게 했다. 늦깎이 인생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남과 비교하며 자괴했지만 늦은 인생 경로가 남들과는 완전히 다른 여행가라는 미래를 열어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사람들마다 다 자기 나름의 인생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해 겨울 초입, 졸업을 앞둔 친구를 술자리에서 만났다. 어떤 눈치 없는 후배가 “취직은 잘 됐어요”라고 물었다. 친구는 취업을 못했다는 사실이 황망했던지 졸업유예라는 한마디만 하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대학 5학년생이란 말이 일반화된 지 오래. 그들은 어릴 때부터 학원에서 학교 진도보다 앞서 배웠고 영어도 남들보다 먼저 배운 세대다. 남들보다 늦는다는 일을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들이 4학년으로 끝낼 대학을 5학년까지 다닌다니 좌절감이 얼마나 클까. 그들이 태만했던 것도 아니다. 어떤 세대보다도 대학생활을 열심히 했던 이들이다. 그들 탓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말은 “취직 될 거야”라는 표현이 아니다. “인생 그거 좀 늦어도 상관없어”라는 위로의 말이다.
윤성민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