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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남과 북이 사는 법

입력 | 2009-03-25 20:19:00


4월,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남과 북의 선택이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주 런던으로 날아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몇몇 개별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를 통해 금융위기 무역위축 등을 타개할 경제외교를 펼치고, 북한문제 대응의 공조도 꾀한다. 한미 정부 간 동맹 업그레이드 협의도 있을 전망이다.

2일 그곳에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된다면 이날은 우리에게 FTA기념일이 될 만하다. 노무현 정부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한미 FTA 협상을 타결한 역사적인 날도 2년 전 4월 2일이었다.

이 대통령은 4일 귀국해 10일에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태국 파타야로 간다. 글로벌 경제현안 대처에는 아시아 국가 간 협조도 전례 없이 중요하다.

그런데 파타야 이슈가 애꿎게도 ‘북한 미사일’의 굉음에 묻혀버릴지도 모르겠다. 북이 인공위성이라고 우기는 대형 탄도미사일의 실험발사 예정시점이 4∼8일이다.

김정일 집단도 나 죽자고 미사일을 쏠 리는 없다. 세계를 향한 미사일 도박 역시 그들로서는 체제 생존을 위한 선택일 터이다. 지난날 핵과 미사일 게임으로 재미 봤던 추억이 모험을 충동질했을 것이다.

개방경제의 힘과 미사일 게임

북은 1998년 8월 대포동 1호 미사일을 쏘아 실패했음에도 북-미 회담을 성사시켰고, 미국은 이듬해 초 식량 60만 t을 제공했다. 북은 2006년 10월 핵실험을 강행했고, 두 달 뒤 미국과 대좌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부시 행정부는 북에 속고 또 속으며, 결국 임기 만료 석 달 전인 작년 10월 북을 테러지원국에서 빼주고 말았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무시전략을 썼을 뿐, 실제로 북을 효과적으로 제재하는 데는 무능했다. 부시 집권 8년 중 7년은 한국의 김대중(DJ) 정권 후반기 2년 및 노무현 정권 5년과 맞물렸다. 한국의 두 좌파 정권은 북핵을 제거하려는 미국보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북의 울타리가 돼주곤 했다.

북은 당(黨)과 군(軍)의 노선을 담은 올해 신년사설에서 선군(先軍)사상, 선군시대, 선군조선(朝鮮)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무적의 군력(軍力)을 바탕으로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선군혁명노선”이다. 무적 군력의 1, 2번이 핵과 미사일이다. 부시 미 행정부와 남한 좌파정권들은 결국 북의 핵무장과 미사일 기술 고도화를 위한 시간과 물질적 여건을 제공한 셈이다.

이제 북은 그 미사일을 쏘아 올려, 아직 대북 대응체제를 갖추지 못한 버락 오바마 미 정권을 시험하는 동시에 이명박 정권을 겁주려 한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연구위원장은 북의 미사일 발사 및 대남 위협 의도를 ‘미국 압박하기, 남한정부 길들이기, 남한사회 편 가르기, 내부체제 추스르기’로 요약한다.

북은 지금도 시간이 자기네 편이라고 믿을지 모른다. 지난 수년간은 남한 좌파정권을 이용해 미국 보수정권을 이겨낸 용남극미(用南克美) 기간이었다면, 이제는 미국 진보정권과 통해 남의 보수정권을 무력화시키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을 꿈꾸는 모양이다. 여기에 남남 갈등을 증폭시킬 수만 있다면 용남타남(用南打南)이 될 것이다.

부시-DJ, 부시-노무현 시대와는 역방향으로 한미 공조가 균열되고, 남남 분열이 심해진다면 북의 선군혁명노선이 그야말로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국민은 북의 핵과 미사일을 머리에 이고 잠을 설쳐야 하는 비극을 맞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북이 ‘우리가 너희를 지켜줄 테니 열심히 경제외교도 하고 FTA도 맺어 많이 벌어 바치라’고 할 날을 기다려야 하는가.

주민 굶겨죽이는 강성대국 없다

그럴 수는 없다면 우선 일부 종북(從北)세력의 국론 이간질에 나라가 흔들려선 안 된다. 그리고 한미동맹의 업그레이드를 비롯한 국제공조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 합의가 긴요하다. 물론 정부의 외교와 내치 역량이 필수다. 군사안보태세 강화는 말할 것도 없다.

정부도 국민도 북에 겁먹을 일은 아니다. 주민 굶겨 죽이는 강성대국이 가당키나 한가. 북은 신년사설에서 ‘우리식 사회주의 자립·계획경제의 우월성’을 거듭거듭 자찬하면서도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현실의 절박한 요구이다”라는 말을 지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전군중적으로 유기질 비료를 생산하여 농촌에 보내주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