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 않으면 즐겁지도 않다”는 꽃별. 힘든 일본 활동을 통해 많이 자랐다. 이제는 꽃별만의 음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홍진환 기자
《늘 푹 빠져버리는 베토벤 ‘비창’. 이탈리아 록 밴드 뉴트롤스의 ‘아다지오’를 들으면 오스스 소름이 돋고,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별 일 없이 산다’의 독특함에도 귀가 쫑긋. ‘국악 크로스오버’의 선두주자, 해금 연주자 꽃별(본명 이꽃별·30)은 말한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고 장르는 구분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그를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만났다. 》
해금연주자 꽃별 日활동 접고 한국서 새출발
○ 4집 앨범 처음 한국서 내… 마무리 작업
꽃별은 요즘 4집 ‘옐로우 버터플라이’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드디어 한국에서! 5월 1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두 번째 독주회도 준비 중이다.
해금 앨범이니 한국에서 만드는 게 당연한 일 같지만 3집까진 일본에서 제작했다. 일본인 프로듀서, 작곡가, 밴드와 함께 작업했다. 일본에서 만든 해금 앨범이 한국으로 들어온 셈이다. 1∼3집 모두 1만 장 판매를 넘겼고, 신나라 등 오프라인 음반매장 국악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광고음악으로 쓰인 곡도 여럿이다. 그때 꽃별은 일본 포니캐년 소속 아티스트였다.
국악중·고교를 졸업하고 200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2학년 때였다. 소리꾼 김용우 밴드의 해금 주자로 일본 오사카 무대에 섰다. 청바지를 입고 한쪽 발을 모니터에 올려놓은 채 신나게 해금을 연주하는 모습이 일본 음반사 관계자의 눈에 띄었다.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와 시노자키 마사쓰구라는 유명 작곡가 겸 프로듀서, 일류 뮤지션…. 첫 앨범 ‘스몰 플라워스’(2003년)와 두 번째 ‘스타 가든’(2004년) 제작에서 꽃별은 그저 연주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세 번째 앨범 ‘플라이 플라이 플라이’(2006년) 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는 “의견을 맞춰가느라 프로듀서, 밴드와 치고받고 싸웠다”고 했다.
앨범 제작, 순회공연 등 일본 활동은 쉽지 않았다. 밥 먹을 틈도 없이 스케줄이 빡빡할 때가 있는가 하면, 단 한 명의 관객 앞에서 연주한 날도 있었다. 외로움과 씨름하고 지독히 연습하며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는 시간이었다.
그 바람에 훌쩍 컸다. 3집을 끝으로 일본 프로듀서와 결별하고, 포니캐년코리아로 이적했다. 그간 앨범에서 일본 냄새가 난다는 얘기를 들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4집 앨범에 프로듀서로 나섰다.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참여한다. 꽃별이 자신만의 소리를 내기 위해 자립을 시작한 길이다.
○ “집에선 정통국악 연주하며 마음 다잡아”
꽃별은 국악계에서 자신이 어디쯤 있다고 여길까.
“차세대 연주자?(웃음) 발랄하고 두려움 없고 하고 싶은 일 하고….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아요. 국악 선생님들께서 ‘꽃별이 잘나가더라’ 하면,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요. 힘들고 잘 안 된다고 투정 부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요. 그래서 외로울 때가 있죠.”
처음에는 정통 국악을 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상처도 받았다. 지금은 “한국악기 연주자는 국악이라는 틀에만 갇혀 있어야 해?”라고 반문할 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꽃별은 “이 시점에서 하고 싶은 작업은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면서 나만의 그림을 그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쿠바 리듬과 해금의 애절한 가락이 어떤 모습으로 만날지 궁금하단다.
그래도 국악이 다른 음악과 섞이다 보면 본래의 모습을 잃을까 봐 걱정스럽기도 하다. 무대에서는 좋아하는 현대적인 연주를 선보이지만 집에선 홀로 산조와 정악 같은 정통 국악을 연주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퓨전 국악이라고 서양 악기랑 공연을 하다 보면 소리가 현란해지는 건 사실이에요. 아무리 화려한 기교를 보여도 진짜 소리를 전달할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뿌리는 잃지 말아야 하니까요.”
꽃별이 야무지게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