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 만나러 간다”
1997년이 시작되자마자 천문학자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4000년 만에 지구를 찾는 헤일봅혜성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세기에 기억될 우주 이벤트 중 하나였다. 헤일봅혜성은 지름이 40km로 76년 만에 지구를 찾아 일반인에게도 낯익은 핼리혜성보다 크기는 2.7배, 밝기는 100배나 되는 거대 혜성이다.
헤일봅혜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3월 말. 별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의 뇌리에도 헤일봅혜성이라는 이름을 깊게 새겨 넣는 사건이 벌어졌다.
3월 26일. 제보전화를 받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북부 랜초샌타페이에 있는 한 고급 저택에 출동한 경찰은 39구의 시신과 맞닥뜨렸다.
대부분 10대와 20대로 여성이 포함된 시신은 짙은 색 바지와 운동화를 신은 비슷한 차림새로 나란히 누워 있었다. 시신 중 37구의 얼굴과 몸통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색깔인 보라색 보자기가 씌워 있었다. 시신들의 옷 주머니에서는 ‘진정제에 사과 소스와 푸딩을 섞어 먹은 뒤 보드카를 마실 것’이라는 자살 방법이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자살자들은 ‘천국의 문’이라는 자신들의 웹사이트 홈페이지에 ‘헤일봅혜성의 도래 자체가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조물주의 조화다. 지구에서 쌓은 22년간의 수업은 끝낼 때가 됐다. 인간단계에서 졸업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는 글을 올려놓았다.
또 이들은 집단 자살하기 전 2명씩 짝을 지어 비디오카메라에 “UFO(미확인비행물체)를 만나러 간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 작별인사를 녹화한 뒤 이를 친지들에게 보냈다.
자살극을 주도한 사람은 1960년대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의 성토머스대 음대 교수로 재직했던 마셜 애플화이트로 밝혀졌다. 그는 1975년부터 여류점성가 보니 네틀스(1985년 사망)와 함께 자신들을 ‘더 투(The Two)’ 또는 ‘도(Do)와 티(Ti)’라고 부르며 미국 서부지역을 돌아다니며 더 높은 인간 진화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 UFO에 탑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UFO가 헤일봅혜성의 뒤에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물론 UFO는 오지 않았다.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을 뿐 충격과 파장이 없는 죽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살은 그것이 집단이든 아니든 파장이 작지 않다. 최근 국내에서도 한 여성 탤런트의 죽음이 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살 없는 건강한 사회는 언제쯤 올 수 있을까.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