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의 섹스]
변두리 격투가 변주민이 자신의 로봇 달링 4호를 껴안은 채 피살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다음 날 조간신문은 일제히 이 뉴스를 사회면 특집으로 다뤘다. 지난 겨울 일어난 연쇄살인과 마찬가지로 변주민 역시 뇌가 사라졌기 때문에 언론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간주했다. 피살 현장과 살해 방식을 일러스트로 친절히 묘사한 신문도 있었고, 피살자 주변인물의 인터뷰를 실은 신문도 있었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신문 기사는 넘치는 법이니까.
신문에 실리는 외부 칼럼들도 이번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뤘다. 변주민의 가난을 파헤친 경제학자의 글도 실렸고 이번 사건의 범인을 추리하는 범죄심리학자의 글도 등장했다. 변주민이 특별시연합 격투대전 웰터급에 출전해서 준우승을 거뒀을 때도 언론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나서야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망자도 원치 않을 세상의 관심이 뒤늦게 찾아왔다.
아래 두 편의 칼럼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변주민의 짧은 생을 이해하는데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들의 추정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알 길이 없다. 망자는 원래 말이 없는 법이며, 지식인들은 사후에 떠드는 법이니까.
[동틀 무렵] 변두리 격투가의 불행 (2049년 6월 27일자 R신문에서 발췌)
특별시연합 격투대전 웰터급 준우승자였던 변주민 선수가 어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특별시 보안청의 발표를 들어보니, 지난 겨울 외곽지대 꽃언덕에서 시체로 발견된 중년 남자나 최근 애완견과 함께 살해된 중년 여인과 마찬가지로 변 선수의 뇌 역시 사라졌다고 한다. 두개골을 정교하게 조각내 뇌를 꺼낸 방식을 볼 때, 세 범죄는 모두 동일범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여느 연쇄살인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도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소행으로 짐작된다.
언론은 이번에도 온통 살해 방식과 사이코패스의 범죄 심리에 주목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지점은 '섹스용 로봇과 범죄와의 관계'다. 통계청에 따르면, 아내 대용 로봇을 포함해 섹스용 로봇을 구입한 사람이 마약 복용이나 각종 범죄에 연루된 케이스가 2047년 한 해 동안 145건에 이르며, 이것은 10년 전에 비해 5.6배나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변 선수도 로봇과 섹스를 하는 도중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며, 혈액에서는 신종 마약의 일종인 '솔리튜드 47'이 발견되기도 했다.
진시황 시절에도 자위를 도와주는 장난감이 여럿 있었다. 섹스 보조기구의 역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길고 다채롭다. 특히 21세기 초부터 섹스토이와 섹스로봇 출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감성로봇과 생체 조직기술의 비약적인 발달이 여기에 한 몫을 했다. 2030년대부터 섹스용 로봇 출시가 전 세계적으로 봇물 터지듯 이루어진 것도 인간을 방불케 할 만큼 섬세한 피부재질과 감각적인 움직임, 그리고 '감정교류' 등 고등한 로봇인지기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로봇공학자들이나 바이오공학자들은 인공콜라겐과 생체폴리머 티슈의 등장이 섹스용 로봇의 발전을 10년 정도 앞당겼다고 말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피부, 인간의 것보다 더 부드럽고 매혹적인 성기의 움직임. 120여개의 관절과 초경량 인공뼈 등, 이제 로봇의 외형은 점점 매력적인 인간을 닮아가고 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인간의 섹스는 사이버 섹스, 로봇 섹스, 뇌 자극 섹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여 진화하고 있지만, 20년 전만 해도 발전이 가장 느린 분야가 로봇 섹스였다. 그러나 최근 위와 같은 로봇공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섹스용 로봇의 판매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한 통계 조사에 따르면, 섹스용 로봇을 가정에 구입한 가구는 런던이나 파리가 32%, 뉴욕이 28%, 도쿄와 서울이 18%에 이른다. 서울특별시가 특별히 높은 편은 아니지만, 지난 10년에 비해 크게 늘어난 추세임을 감안하면 안심하기는 이르다. 섹스용 로봇에 대한 애착이나 탐닉은 충동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다른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제 인간의 섹스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생명 탄생이나 정신적 유대를 목적으로 한 육체적 결합이 아니라, 단순 쾌락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로봇이 없거나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으면 섹스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변주민 선수의 죽음은 더욱 불행하다. 그의 끔찍한 죽음도 불행하지만, 그가 아내 대용 로봇 달링 4호를 껴안고 사정까지 한 채로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 자체가 여간 슬픈 일이 아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인간 사회에서 위안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니까. 그가 복용했던 '솔리튜드 47'처럼 그는 생전에도 무척 고독했던 모양이다.
로봇이 아무리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다고 해도 사람을 대체할 순 없다. 섹스는 가장 고결한 '정신과 육체의 교감'이라는 점에서, 섹스를 온전히 인간들에게 돌려줄 것을 제안한다. 당신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로봇이 당신 옆에서 울어줄 가능성은 없으니까.
진근영 (동서사회과학연구소 소장, 철학박사)
[핫 플라자] 틱을 이해하자 (2049년 6월 27일자 D신문에서 발췌)
어제 슬픈 소식 하나를 접했다. 우연히 TV 뉴스를 틀었더니, 특별시 변두리에서 끔찍한 시체로 발견된 격투가의 현장 스케치가 나오고 있었다. TV 뉴스에는 이웃 주민의 인터뷰도 짧게 실렸는데, 피살자인 변주민 선수의 별명이 '틱틱' 혹은 '알람'이라고 한다. 동네 꼬마들이나 주변 친구들도 모두 그를 '틱틱'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변 선수의 별명이 '틱틱'이 된 것은 그가 평소 시계추처럼 규칙적으로 생활한 탓도 있지만, 동네 아주머니의 말처럼 그는 줄곧 뚜렛 증후군을 앓았다. '틱'(tic)이란 증세가 나타났던 것이다.
'틱'이란 무엇인가?
틱이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눈을 심하게 깜빡거리거나 목을 꺾는 것처럼 운동틱도 있고, '크윽' '힉' 같은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는 음성틱도 있다. 주로 청소년기에 많이 발병하며 대부분 1년 이내에 사라지지만, 성년까지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운동틱과 음석틱을 함께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질병을 '뚜렛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100명 중 1명꼴로 발견되는 이 질환은 대뇌 전두엽이 하부피질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거나, 하부피질이 과도하게 활동할 때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주민 선수에게 '목을 두 번씩 반복적으로 꺾는 버릇이 있었다'거나 변 선수가 '말을 할 때 딸꾹질 같은 것을 한다'는 동료들의 진술로 유추해본다면, 그는 '전형적인 뚜렛 증후군' 환자로 보인다.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거나 남 앞에서 발표를 할 때 증세가 더 심해진다. 긴장감이 그를 극도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틱 증세를 가진 학생들은 대인관계를 스스로 기피하거나 따돌림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예전에는 '틱'이 어쩔 수 없는 증세라는 사실을 모르는 교사들이 틱 장애 환자들을 '반항한다'며 교실에서 때린 경우도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는 변주민을 '맑고 순진한 외모를 가진 젊은이였지만 친구가 많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혼이며, 아내 대용 로봇과 단 둘이서만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환자들 중에는 충동을 잘 억제하지 못하거나 주의가 산만하기 때문에,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틱장애 환자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사회생활을 훌륭히 수행한다. 우리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면, 그들 마음의 병은 더욱 깊어갈 것이다. 변주민 선수가 아내 대용 로봇을 껴안은 채 끔찍하게 살해됐다는 소식은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한다. 혹시나 '그의 질병이 그를 더 외롭게 하지는 않았을까' 잠시 근심에 젖어본다. 앞으로는 이와 같은 불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민진형 (서울특별시 희망진의원 병원장, 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