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더 타임스 사연 소개
아내와 두 딸 침몰전 구명보트 옮긴후
객실로 돌아가 따뜻한 우유병 가져와
밧줄에 묶어 추위에 떠는 가족에 건네
침몰하는 타이타닉호 안에서 구명보트로 갈아탄 아내와 아이를 향해 ‘마지막 선물’을 내려보냈던 가장의 사연이 한 세기만에 공개되어 화제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 온라인판은 26일 아내가 남긴 기록을 통해 사후 97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아서 웨스트 씨(당시 36세·영국 콘월 거주·상점 관리인)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아내 에이다(당시 35세) 및 두 딸 콘스턴스(당시 7세), 바버라(당시 1세)와 함께 미 플로리다로 이민을 가기 위해 타이타닉호 2등석에 오른 웨스트 씨가 미국에서의 새 삶에 대한 기대에 부푼 것도 잠시, 1912년 4월 14일 밤 타이타닉호의 침몰이라는 비극을 맞았다. 웨스트 씨는 두 딸에게 구명조끼부터 입힌 뒤 아내와 아이를 구명보트로 데려갔다.
아내와 아이들이 보트에 안착하자 갑판에 서 있던 웨스트 씨는 객실로 돌아가 따뜻한 우유 한 병을 가져온 뒤 우유병을 밧줄에 묶어 보트를 향해 내려보냈다.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마지막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아내 에이다 씨와 두 딸 콘스턴스, 바버라는 구조선 ‘카르파티아호’에 의해 구조된 뒤 플로리다로 이주했으며 에이다 씨는 1953년에, 콘스턴스와 바버라는 각각 1963년, 2007년에 숨졌다. 한편 타이타닉호에서 희생된 사람은 모두 1517명에 이른다.
에이다 씨는 구출 뒤 남긴 회상 기록에서 “남편은 우유병을 내게 건네준 뒤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고 갑판으로 돌아갔다”며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한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했다. 그는 “타이타닉호가 가라앉는 순간 구명보트에 있던 일부 남자 승객들은 두려움에 질려 여자들의 치마 밑에 숨기까지 했지만 남편은 1500여 명의 다른 승객들과 함께 용기 있는 죽음을 맞았다”고 전했다.
또 “나와 딸은 남편의 도움으로 구명보트 앞줄에 탈 수 있어 목숨을 건졌다”며 “남편에게 ‘굿바이’라고 작별인사를 했을 때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없었다”며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음을 예감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에이다 씨는 이어 “처음엔 배가 빙하에 부딪친 정도라고 생각했다가 배가 본격적으로 가라앉으면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의 안전이 너무 걱정되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숨질 때까지 참사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으나 바버라가 숨진 뒤 에이다 씨가 남긴 당시 상황에 대한 기록 및 웨스트 씨가 남긴 ‘우유병’이 공개되면서 이번 사연 역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눈물겨운 가족애’가 담긴 웨스트 가족의 우유병과 에이다 씨의 기록물은 4월 18일 영국 경매사 ‘헨리 올드리지 앤드 선스 오브 디바이즈스’가 주관하는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경매에는 또 웨스트 씨가 타이타닉호 사고 직전에 배의 아름다움과 화려한 모습에 감탄하는 내용을 적어 지인에게 부친 편지도 공개된다. 예상되는 총낙찰가는 4만∼6만 파운드(약 7800만 원∼1억1730만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