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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버드나무 아래 내사랑 윤회의 江 넘나드네

입력 | 2009-03-28 02:59:00


◇ 버드나무의 네 가지 삶/샨사 지음·이상해 옮김/212쪽·1만 원·현대문학

프랑스 문단에서 활동하는 중국작가 샨사(37)의 연작소설. 장편소설 ‘여황 측천무후’로 유럽 문단에 널리 알려진 샨사가 ‘천안문’에 이어 프랑스어로 쓴 두 번째 소설이다. 버드나무를 모티프로 명·청 시대부터 문화대혁명기, 최근 경제부흥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연인들의 이야기 네 편을 묶었다.

첫 번째 이야기의 배경은 15세기 중국. 꼬마 충양은 아버지와 함께 고관이 초대한 점심식사 자리에 참석한다. 충양은 고관이 건네는 값비싼 장난감 대신 수양버들 가지 두 개를 꺾어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가지를 심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다 집안이 파산하면서 타향살이에 나선다.

부모를 잃은 충양은 겨우 생활을 이어가며 과거시험을 준비한다. 어느 날 동향 청년 칭이를 만나 친분을 쌓고, 그의 여동생 뤼이와 결혼한다. 빈털터리 남편에게 아내는 말없이 헌신하고, 충양은 장원급제를 한다. 그는 시골에 있는 아내를 그리워하면서도 욕망을 떨쳐내지 못한다. 베이징에 머무르면서 ‘권력의 핵심’에 다다르지만 전쟁 끝에 부와 명예는 사라지고 아내도 떠나간다.

다음 생에선 오누이가 돼 만나자는 충양의 혼잣말로 1편이 끝난다. 두 번째 이야기는 19∼20세기 초 중국 어느 명문가에서 이란성 쌍둥이 남매 춘이, 춘닝이 태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부유한 집의 마당에도 수양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아들 춘이는 책은 내팽개친 채 바깥세상을 동경했고, 딸 춘닝은 영특하게 하나하나 배워갔다. 그러잖아도 인정받지 못했던 춘이는 아버지의 첫 번째 첩과 관계한 사실이 들통 나 집을 떠난다. 아버지는 난동 끝에 다른 첩이 휘두른 칼에 죽고, 어머니도 착란증세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는다. 홀로 남은 춘닝은 무너진 집안을 바로 세우는 한편, 어딘가에 살고 있을 오빠를 그리워한다. 모두 사라진 집을 지키면서 자신이 택한 남자와 결혼하고 이내 임신해 사내아이를 출산한다.

세 번째 소설에서 등장하는 16세 소년 웬은 마치 2편의 끝에 태어난 사내아이가 훌쩍 자란 것 같다. 문화혁명의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던 시절, 웬은 계급투쟁을 하려고 농활을 가는 기차에서 여대생 류를 만난다. 농활 도중 웬은 반혁명 음모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옥에 갇히고, 이는 류의 밀고 때문임을 알게 된다. 배신감에 괴로워하던 웬은 면회 온 류의 진심을 확인하고 먹을 것을 몰래 갖다 달라고 부탁한다. 며칠 후 류가 던진 음식물이 안뜰에 떨어지는 순간, 밖에서 울려 퍼지는 총성.

마지막 소설의 주인공 아징은 류의 환생일까. 아징은 홍콩행 비행기 안에서 잠에 빠진다. 하늘 궁궐에서 아징은 천상황후의 아들과 결혼해 사내아이를 낳는다. 행복한 생활이 이어지지만 노쇠는 피할 수 없고 결국은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징은 괴롭다. 아징은 아이에게 자신은 곧 여행을 떠난다고 말하고 아이는 그에게 수양버들 가지로 만든 관을 건넨다. 홍콩의 호텔에 도착한 아징의 가방 안에는 시든 수양버들 관이….

중국에서 버드나무는 죽음과 재탄생을 상징한다. 샨사는 윤회의 고리 속에서 엇갈린 사랑을, 두 남녀의 이야기를 설화처럼 때론 판타지처럼 풀어간다. 서사 속에는 중국의 전족 풍습, 매사냥 풍경, 문화혁명기의 정치재판 등 중국사의 면면이 담겨 있다.

2편에서 길에서 만난 노인이 춘이에게 수수께끼처럼 던진 말은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삶은 영원하고, 이별은 순간적이네. 운명은 힘차게 흐르는 강이니, 그냥 떠내려가다 보면 대양에 가닿게 될 걸세.” “사랑하는 존재는 어두운 물결 깊은 곳에 있는 진주일세. 혹시 난파를 당하게 되면 그것이 그 보석을 캐기 위함임을 명심하게.”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