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착하지 않은 삶/최영미 지음/128쪽·7500원·문학동네
◇ 수양버들/김용택 지음/108쪽·8500원·창비
다시 시인의 열정으로 귀환한 고백 - 최영미 시집
섬진강에서 실려 온 애잔한 봄햇살 - 김용택 시집
가끔씩 사람들은 잊는다. 시인이란 뭘 하는 존재인지를. 하지만 시인은 ‘현재’를 살고 ‘지금’을 시로 쓰는 이다. 그 존재 이유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두 시인의 작품이 25일 동시에 나왔다.
시집 ‘돼지들에게’ 이후 4년 만에 네 번째 시집을 펴낸 최 시인은 스스로도 “다시 시인이 됐다”고 말했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투명함에 대한 나의 열정을 확인하며. (…) 정확한 문장은 아름답다고. 옳은 문장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나는 아직도 믿는다.’(‘시인의 말’ 중에서)
시집은 소소한 일상과 번잡한 세계가 나란하다. ‘詩와 씨름하며/오렌지를 자르다/노란 방울이 바닥에 튀었다’(‘한여름, 부엌에서’)가, ‘예수와 마호메트가 태어나 묻힌 곳에서/예언자들이 평화를 설교했던 성지에서/왜 매일 총질이 끊이지 않는가’(‘글로벌 뉴스’)에 분노한다. 떼어놓을 수 없는, 내 안의 세상과 세상 속의 나인 셈이다. ‘지상 최대의 쇼를 냉면에 말아 먹는다/편안히 집에서 실크로드를 순례하는 밤’(‘지상 최대의 쇼’) 안과 밖이 섞이며, 시인은 시를 낳는다.
김용택 시인의 ‘수양버들’은 늘어진 나뭇잎을 흔드는 봄 햇살의 애잔함 같다. ‘그래서 당신’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10번째 시집은, ‘천변만화(千變萬化)’한 대지를 향해 팔을 벌린 채 킁킁거리는 시인의 미소(혹은 주름)가 비친다.
그 찬연한 자연의 세월 앞에 선 시인은 당당하다. ‘내 나이/올해로 이순(耳順), 세상물정 모르는 바 아니나,/시 몇 편 써놓고/밖에 나가니/세상 부러울 게 없다.’(‘이순’) ‘한 점 숨김이 없다 망설임도 꽃은, (…) 허튼짓이 없으니, 섭섭지도 않고/지는 것도 겁 안난다.’(‘꽃’)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