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국가 지도자들이 ‘룰라파(派)’와 ‘차베스파’를 두고 어느 편에 줄을 설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룰라파, 차베스파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이름에서 비롯된 말. 외교노선과 경제정책 등에서 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두 국가는 현재 중남미의 패권과 리더십을 놓고 치열한 경쟁구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은 26일 양국 지도자의 최근 행보를 통해 향후 중남미 정치판도의 양상을 전망했다. 지난주 엘살바도르 대통령 선거에서 20년 만에 좌파 지도자가 탄생하자 차베스 대통령은 곧바로 축하 전화를 걸어 중남미의 단결을 강조했다. 같은 시기 룰라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외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통화에서 “세계 여러 국가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고 있다. 이번 엘살바도르 대선 결과는 21세기 이후 중남미의 역사적 흐름을 반영한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엔 엘살바도르가 반미노선과 중남미 역내 단결의 중심축인 차베스파와 함께하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21세기형 사회주의’를 강조하는 차베스파엔 쿠바 볼리비아 등 좌파 정권이 들어선 국가가 속해 있다고 포린폴리시는 전했다.
한편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이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한 축을 이루며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자 무역, 환경, 국제 금융제도 개편과 같은 세계 공통 이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며 ‘글로벌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오바마 정권 출범 이후 대미관계가 개선되면서 차베스파와는 다른 룰라파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고 포린폴리시는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국가들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와 거대 신흥시장인 브라질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차베스파를 택하면 석유 수익이 많은 베네수엘라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을 수 있지만 미국과는 적이 된다.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룰라파에 서면 대미관계 등 외교 면에서 유리하다.
마우리시오 푸네스 엘살바도르 대통령 당선인의 선택은 지금까지는 룰라파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선 직후 “오바마 행정부와 강력한 유대를 희망한다”고 밝혔고 브라질 방문 도중 “룰라 대통령은 좌파 정치인으로서 나의 모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중남미에서 차베스파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푸네스 당선인이 향후 베네수엘라를 방문해 어떤 말을 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포린폴리시는 전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