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전 ‘패배의 눈물’과 이치로 못잡아 분노
봉중근(29·LG)과 마주 앉은 서울 압구정동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 식사를 반쯤 마쳤을 때쯤 한 젊은 커플이 다가왔다. “저, 죄송하지만 사인 한 장만…. 저희가 정말 팬이라서요.” 사람 좋은 봉중근은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승낙했다. “예. 그럼요.” 하지만 그건 신호탄에 불과했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식당 손님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장은 두 장이 되고, 네 장은 여덟 장이 됐다. 마침내 펜을 내려놓은 봉중근은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 정말 인기가 많아진 건가?” 확실히 뜨긴 떴다. 한국의 준우승으로 막을 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그는 세 차례 일본전에서 당당하게 호투하면서 ‘의사 봉중근’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달라진 대우를 실감하기 시작한 건 25일 밤늦게 귀국하던 순간. 인천공항 직원들부터 청와대 직원들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그를 보면 이렇게 말했다. “덕분에 한 달 동안 너무 즐거웠다”고. 평소 자주 드나들던 집 근처 커피전문점에서도 그랬다. 한 무더기의 여성팬들이 사진을 찍자며 달려들었다. 이게 바로 WBC 효과일 터. 그래서 들어봤다. 봉중근이 털어놓는 WBC의 추억, 그리고 미처 말하지 못했던 뒷이야기.
○3월9일, ‘봉중근 의사’ 탄생
첫 번째 일본전 등판. 콜드게임패 이후의 첫 리턴매치. 알려진 대로 봉중근은 이날 선발을 자청했다.
아끼는 후배 김광현이 뭇매를 맞는 걸 보고 울분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김인식 감독이 듣는 데서 “내가 일본전에 나가면 정말 잘 던질 수 있는데…”라고 노래를 불렀다. 마침 류현진도 허벅지가 안 좋다고 했다. 결국은 기다리던 선발 통보를 받는데 성공. 하지만 솔직히, 곧바로 후회했다. “괜히 나섰나 싶어서 진땀이 나고 잠도 잘 안 오더라.”
그래서 준비한 게 그 유명한 ‘영어 선제공격’. 이치로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지 8년이 지난 지금도 입을 닫고 지내는 선수로 유명하다. 하지만 쾌활한 성격의 봉중근은 미국 진출 4년 만에 완벽한 영어실력을 갖게 됐다. 신일고 동기인 팀 동료 김광삼은 “고등학교 땐 한국말도 잘 못 하던 녀석이 영어로 이치로의 기를 죽이다니 믿을 수 없다”고 놀린단다. 어쨌든 봉중근에게는 ‘영어’라는 구질 하나가 더 있었던 셈이다.
○3월18일, ‘이치로, 위치로!’
하이라이트는 역시 ‘이치로 굴욕 사건’. 봉중근이 견제구를 던지는 동작만 취해도 곧바로 1루로 엎어져버리던 이치로의 모습. 사실 처음엔 타이밍이 늦어서 못 던진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치로가 슬라이딩하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화가 나더란다. “그동안 수없이 이치로를 봐왔지만 1루에서 슬라이딩 하는 건 처음 봤다. 그래서 한 번 더 해봤는데 또 슬라이딩을 하더라.” 보는 사람은 통쾌했어도 당사자는 피가 말랐다. “치열한 기싸움이다. 이치로가 뛸까봐 정말 긴장을 많이 했다. 어떻게든 도루를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이후 일본 주자들은 아예 1루 쪽에 붙어 있었다. 1루에서 살아남는 것에 의미를 둔 것이다. 승리의 뿌듯함 속에 공을 던졌다는 봉중근. 전광판에 찍힌 94마일(151km)이라는 숫자를 본 후에는 울컥하기까지 했다. “어깨 수술 전인 2003년 이후 94마일을 찍은 건 처음이다. 그것도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였으니…. 다시 내 공이 돌아왔다는 걸 느끼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뻔 했다.” 그래서 그 날 그가 더 당당해 보였나보다.
○그리고 결승 “이치로라서 울었다”
봉중근은 전날 등에 담이 온 걸 느꼈다. 불펜 피칭 때부터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칭스태프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런 답변을 들었다. “네가 나가서 잘 못 던져도 국민들은 이전 두 번을 생각해 차마 돌을 던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후배가 나갔다가 얻어맞으면 ‘봉중근이 나왔어야 했다’면서 비난에 휩싸이지 않겠냐. 결국 너 밖에 없다. 총대를 메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첫 경기에서는 나보다 일본 선발 이와쿠마가 긴장한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였다. 이와쿠마는 여유로워 보이는데 내가 너무 얼어있었다.” 게다가 일본 타자들은 봉중근에게 공을 많이 던지게 하겠다는 각오로 타석에 나선 듯 했다. ‘무조건 100개는 채운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 수밖에. 하지만 경기 후 흘린 눈물은 단순히 패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이거다. “이치로에게 맞은 게 너무 억울해서 울었다. 우리 모두 이치로를 가장 잡고 싶었는데 하필 상대가….”
그래도 한국 야구는 끝까지 힘을 보여줬다. “우리가 9회말에 동점을 이뤄 연장까지 끌고 갔다는 것만으로도 강하다고 생각한다.” 100% 옳은 말이다.
○이제는 LG 봉중근, 목표는 15승!
3년 전 첫 대회에서 그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번엔 이 대회의 기분만 느끼자. 내가 언젠간 꼭 다시 와서 펄펄 날아주겠다”고 결심만 했다. 하지만 기대보다 더 빨리 기회가 왔다. 대회 개막 전 “나보다 후배들의 할 일이 더 많을 것”이라고 했지만 어느새 대표팀 에이스 노릇을 해냈다.
그리고 그는 이제는 4년 후를 내다보고 있다. “그 땐 분명히 우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난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이 마쓰자카나 이와쿠마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투수라고 믿는다”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도 ‘의사’이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은 투수가 되고 싶다.” 봉중근의 눈빛은 일본의 강타자들을 상대로 뿌려대던 그의 직구 만큼이나 강하고 확고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동아닷컴 온라인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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