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업계에 대한 지원방안에 전 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자동차 3사의 회생과 자동차 업계에 대한 미 정부의 지원이 현 시점에서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3사 중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는 일종의 한계기업에 속한다. 자생적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미 정부가 이들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사실상 비경제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락 오바마 정부가 지원에 나서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자동차산업의 문제가 전후방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내용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우선 주된 지지 세력인 노조와의 갈등, AIG에서도 겪은 바 있는 기존 근로계약의 법적 구속력, 비효율적인 의료보험제도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먼저 미국 정부가 자동차 업계를 대하는 방식은 AIG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과 상당히 닮아 있다. AIG 역시 개별 기업으로서는 파산이 맞는 선택이었지만, 결국에는 구제를 택할 수밖에 없었듯이 자동차 업계 역시 오바마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GM과 AIG는 순진했던 리먼브러더스와는 달리 처음부터 부실 규모를 전부 고백하지 않고, 일단 지원을 받아가며 부실 규모를 점차 늘려나가는 지능적인 모습을 보였다. 마침 정권 교체를 맞은 미 정부는 이들의 사악한 전략에 말려들어 늪에 빠진 코끼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바마는 앞으로 은행, 보험사, 신용카드사뿐 아니라 자동차회사, 항공회사, 유통회사를 넘어 파산이 속출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과 심지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업계까지도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외통수에 걸려들어 버린 셈이 되었다.
자동차 업계나 AIG에 대한 미 정부의 대처는 앞으로도 ‘경제 회생’을 내세운 월가나 산업계의 요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미국 시스템의 구조적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또 노회한 경영자들과 이들을 고용한 탐욕스러운 이사회는 앞으로도 이러한 허점을 십분 이용하려 들 것이다.
결국 미국의 위기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것일 뿐, 여전히 진행형이다. 근본적인 수술을 하지 않고 아스피린 한 알로 종양을 치료할 수는 없다.
미국 경제의 본격적인 회복 시기는 정부의 무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금흐름이 고갈된 기업들의 파산과 실업자 증가를 견디지 못한 미 정부가 메스를 들고 수술실에 들어가 과감하게 절개를 시작할 그 어느 때쯤이 될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미국은 외환위기 때 우리 손에 쥐여 주었던 처방전을 지금 그들에게 써야 할 상황이라는 걸 잘 모르는 것이다.
박경철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