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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대안은 동아시아 경제통합

입력 | 2009-03-31 02:53:00


지난 50여 년간 동아시아 경제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와 수출 시장으로서의 미국에 의지해 성장을 계속해 왔다.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이 구도는 이제 끝났다. 이와 함께 동아시아 경제의 통합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근거는 이렇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함께 미국의 소비시장은 크게 축소되고 있다. 이는 미국에 수출해 온 일본 한국 싱가포르 중국 등의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아시아에서 수출 경쟁력이 강한 나라부터 순서대로 금융위기의 타격을 받고 있다. 경쟁력이 부족한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는 위기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 동아시아 경제를 지지해 온 미국의 과잉 소비는 끝났다.

다음으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역할 축소를 지적할 수 있다. 달러의 신용이 하락한다는 게 아니다. 현재 달러는 엔 이외의 통화에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 강한 달러와 달러의 역할 축소는 표리의 관계다. 투기적인 투자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달러의 신용은 높아지지만 해외에서의 달러 공급은 줄어들게 된다.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달러 부족 현상이 확대되는 것이다.

무역 결제에는 신용도가 높은 통화를 이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달러밖에 없다. 아울러 달러 이외의 통화 신용도가 낮아지는 동시에 달러 공급이 부족해지면 무역금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금융위기로 미국의 금융기관은 무역 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여신 업무에서 점점 손을 뗄 것이다. 미국 소비시장의 축소와 해외의 달러 부족이라는 두 요인으로 인해 태평양을 오가는 무역은 급속히 수축하게 된다.

미국 영국 등은 내수 중심의 경제로 이동할 것이다. 영미는 국내시장이 커서 무역 의존도가 높지 않았던 만큼 전환이 가능하다. 동아시아 경제는 다르다. 경제성장의 중심이 수출이었기 때문에 미국을 대신할 수출 시장과 달러를 대신할 결제 통화를 찾아내지 않으면 경제 회생의 가능성은 줄어들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동아시아 각국의 시장개방과 엔의 공급 확대가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각국은 미국으로 적극 수출하는 반면 국내에서는 보호조치를 계속하는 등 자발적인 시장개방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 미래가 안 보이는 지금 동아시아는 스스로의 시장을 개방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단기적으로는 달러 공급의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겠지만 달러의 미국 회귀를 멈출 수 없는 이상 달러를 대신하는 결제 통화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역할은 엔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엔은 신용도가 높으면서도 해외 유통량이 비교적 적은 통화다. 독일의 마르크는 엔보다 신용은 떨어지지만 유럽에서 폭넓게 결제에 이용됐고 이것이 유로 탄생의 기제가 됐다. 아시아의 결제 통화는 압도적으로 달러에 편중됐기 때문에 유로 같은 통화를 낳을 바탕이 없었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인해 아시아에서 엔 공급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나 달러 의존에서 자립하거나 자립을 강요당하게 될 것이다. 달러가 약해서가 아니라 달러를 입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아시아 경제통합 논의는 성장을 지속하게 해주는 시장에 바탕을 둔 구상이었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 이후의 지역통합은 세계 무역시장이 축소되는 가운데 성장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금융위기로 인해 지역경제의 통합이 진행되는 얄궂은 결과인 것이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