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금단의 벽’을 넘었다. 1990년 3월 31일 대한항공 913편이 서울∼소련 모스크바 간 정기 항로에 처음 취항했다.
이 여객기에는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국제학술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김항욱 항공대 학장이 타고 있었다. 모스크바행 승객은 45명이었고, 암스테르담, 취리히 등으로 가는 승객 398명, 승무원 22명 등 모두 410명을 태웠다. 비행기는 이날 오후 8시 40분 김포공항을 떠나 4월 1일 오전 2시 15분(현지 시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도착했다.
당시 소련 관영 모스크바 방송은 항로 개설을 획기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 방송은 “소련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이 모스크바와 서울 간 직통항로를 개설해 주 1회씩 비행할 것”이라며 “2년 전만 해도 만약 서울까지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해 달라고 아에로플로트 지점에 부탁했다면 정신 빠진 사람으로 취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창사 40주년을 맞은 대한항공은 사외보 ‘스카이뉴스’의 ‘창사 40주년 특집 50대 뉴스’ 중 하나로 ‘모스크바 첫 취항’을 꼽았다. 대한항공의 자평이 이렇다. ‘옛 소련 및 동구 진출을 가속화할 새 항로를 열었다. 또한 시베리아 영공 통과도 가능해져 비용 절약과 승무원의 휴식, 정비, 대체기 투입 등에 여력이 생겨 유럽 항로 경쟁력도 한층 높아졌다.’
대한항공은 이후 1994년 인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서울∼뭄바이∼카이로 노선을 열어 세계 전 대륙 취항을 이뤘다.
모스크바 취항으로 시작한 시베리아 영공 통과는 2006년 한-러 항공회담에서 그 운항횟수를 대폭 늘렸다. 주 50회를 주 90회로 늘렸고, 러시아 측이 사용하지 않은 운항횟수를 활용할 수도 있게 됐다. 이 회담에서 캄차카 항로보다 30분가량 단축 가능한 북극항로를 새로 이용하기로 합의했다.
태평양 첫 횡단에 성공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1972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바퀴를 내렸다. 교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그런 시절을 지나 이제는 우리 국적기가 세계 39개국 116개 도시를 누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