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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명화 여행] 클림트의 여성편력

입력 | 2009-04-01 07:37:00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09 구스타프 클림트 한국전시가 세간의 화제다. 약 1세기 전, 미술과 건축, 미술과 공예, 미술과 디자인을 결합한 ‘토탈아트’의 선구자 클림트의 생생했던 예술 현장을 서울에서 감상하는 일은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화제, 바로 클림트의 여성편력이다.

클림트와 애정관계에 있던 여인들 중 가장 세세한 기록이 남아 있는 인물은 마리아 짐머만이다. 그녀는 16살 때 모델과 작가로서 클림트와의 운명적 첫 만남을 가졌다. 연인관계로 발전해 구스타프와 오트 두 아들까지 두게 된다. 마리아는 클림트와의 결혼을 간절히 원했으나 아들 오트의 죽음으로 둘은 결별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클림트는 유럽의 전설적인 팜 파탈 알마 쉰들러와도 사랑에 빠졌으나 결별했다. 알마 쉰들러는 오스트리아가 낳은 위대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와 독일의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아내였던 사람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클림트는 모델이 되어주기만 하면 반드시 잠자리를 했다는 속설도 있다. 클림트가 1918년 56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무려 14명의 사생아들의 어머니들이 상속을 요구해왔는데, 결국 정신적 동반자였던 에밀리 플뢰게가 세상을 뜬 클림트를 대신해 남겨진 유산을 이들에게 나눠줘야 했다. 그가 즐겨 그린 임신이라는 주제는 바로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클림트가 생전에 가장 관심을 가진 주제는 여인이었다. 감각적 선과 화려한 색채로 장식된 누드화와 초상화는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 여인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유혹당하는 느낌마저 든다.

클림트는 약 4000여 점의 드로잉을 남겼는데, 대부분은 여성의 드로잉, 이른바 ‘에로틱 드로잉’이었다.

그러나 클림트의 에로틱 드로잉에 등장하는 여인을’ 남성을 죽음이나 고통의 치명적 상황으로 몰아가는 악녀의 이미지로 단정하는 것은 금물이다.

클림트의 운명의 여인들은 곧 다가올 유럽의 자기 파멸이라는 악몽의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섬뜩하면서도 오묘한 눈빛, 반쯤 열린 입술, 불규칙한 얼굴선은 20세기 초 유럽인들이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될 군국주의와 파시즘, 세계대전, 그리고 대학살의 위협을 미리 보여준 전조였다.

이렇게 곧 다가올 희미하지만 강력한 기운을 내뿜는 비극의 길목에서 클림트는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비엔나 문화의 전성기, 곧 황금빛 시대를 그린 최후의 화가가 되었다.

박대정|조형예술학박사·독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