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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자원 관리하는 바이오뱅크”

입력 | 2009-04-03 03:02:00


암덩어리 급속냉동 → 저장 → 분양…

고양 국립암센터 ‘종양은행’ 가보니

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국립암센터. 이곳에서는 매년 6000여 건의 수술이 이뤄진다. 거의 매번 징그러운 암 덩어리가 떨어져 나온다. 그러나 건물 4층에 있는 ‘육안검사실’에서는 이런 암 덩어리가 귀중한 생물자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육안검사실에 들어서자 마침 옆방 수술실에서 50대 남자의 대장암 수술에서 나온 조직이라며 20cm 정도로 절제된 조직을 보내 왔다. 환자는 수술 전에 몸에서 떼어낸 조직을 연구재료로 써도 좋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먼저 병리의사가 암이 발생한 부위부터 살펴봤다. 암 조직이 보관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떨어졌다. 그는 즉시 냉동 처리를 지시했다. 생체조직 창고인 종양은행에 보관하기 위해서다.

국립암센터의 종양은행 소속 연구원은 작은 시험관(동결용 바이알)에 암 조각을 잘라 넣는다. 암세포와 비교하기 위해 정상조직도 잘라내 다른 시험관에 넣었다. 암 조직을 초저온 알코올이 들어 있는 시험관에 넣어 냉동시킨 것이다. 혈액 샘플을 포함해 20여 개의 시험관이 만들어졌다. 이 시험관들은 영하 195도의 액체질소로 가득 찬 저온 밀폐용기에 담아 저장한다.

연구원을 따라 연구동 지하 1층에 내려가 보니 지하엔 은빛 액체질소 탱크 20기가 늘어서 있었다. 보관용 금속박스에 시험관을 넣고 탱크 안에 넣었다. 영하 195도의 공간에 상자를 옮겨 넣어야 하니 손으로 직접 넣지 못하고 전용 도르래를 사용했다.

국립암센터는 이렇게 10년 동안 모은 1만여 개의 샘플을 지난해부터 전국에 있는 의사와 과학자들에게 분양하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조직을 건네받아 단백질, 유전자 등을 추출해 연구 자료로 활용한다. 신약 개발을 위해 암 유전자 등을 찾아내려면 인체 조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건국 국립암센터 과장은 “인체 질병이나 유전자 연구는 인체 조직(검체)을 몇 개나 사용했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며 “인체 자원에 욕심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질병관리본부 및 보건복지가족부의 지원을 받는 12개의 병원과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는 5개의 병원이 매년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 인체자원을 관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인체자원은행을 ‘바이오뱅크’라고 부른다. 국내에서는 아직 이름이 제각각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지원을 받는 기관들은 ‘검체은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또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보건복지부 지원기관들은 ‘인체자원은행’이란 명칭을 쓴다. 일부에서는 조직은행이란 이름을 쓴다. 국립암센터에선 ‘종양은행’이라고 부르고 있다.

최근 정부도 통합된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서울 은평구 질병관리본부를 인체자원 중앙은행으로 지정했다. 이곳에선 인간의 혈액을 백혈구세포, 혈장, 혈청, 혈구, 유전자샘플 등으로 분리해 보관한다. 액체질소탱크 69대와 영하 70도로 유지되는 초저온 냉동고 79대를 보유하고 있어 혈액자원 보관시설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12개의 다른 인체자원과 협력해 2012년까지 20만 건 이상의 인체자원을 확보할 계획이다. 교과부는 ‘인체유래검체은행’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한겸 고려대 인체유래검체거점은행장(의대)은 “인체자원을 모두 통합해 관리하고 함께 사용하는 체제를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며 “자신의 신체를 잘 기증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극복해야 하고 법과 제도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