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줄넘기와 이자율
그 후에도 심사분석회의가 가끔 열렸는데 한번은 금융정책, 특히 이자율의 기능에 관해 대통령 앞에서 보고하게 됐다. 당시에는 이자율이라고 하면 단순히 은행이 예금주나 융자받은 차주에게 제공하는 대가라고 생각할 뿐 그것이 한 사회의 가용자원 배분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정책 금융 때문에 이자율이 다기화돼 있는 것도 문제였다.
나는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쉽게 알아듣도록 설명할 수 있을까 궁리한 끝에 줄넘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기로 했다.
“가령 일정한 높이로 줄을 매놓고 아이들에게 그것을 뛰어넘게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아이들과 뛰어넘지 못하는 아이들로 나뉩니다. 높이를 낮추면 좀 더 많은 아이가 줄을 뛰어넘을 것이고 반대로 높이를 올리면 줄을 넘는 아이가 적어질 것입니다. 즉 줄의 높이에 따라 줄을 통과하는 아이 수가 달라집니다.
이자율의 수준은 이 줄과 마찬가지입니다. 합리적인 기업은 투자사업의 수익률과 이자율을 비교해 전자가 후자보다 높을 때에는 투자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사회 내의 잠재적 투자사업 중에는 현재 이자율의 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업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업도 있습니다. 이자율의 줄을 낮추면 좀 더 많은 잠재적 후보 사업이 줄을 넘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자율은 일정 기간에 그 사회에서 실현할 수 있는 투자사업의 총량을 결정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각종 투자사업의 내용이 결정되면 투자사업에 쓰이는 기계류, 원자재, 노동 등 생산요소의 사용량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이자율은 투자와 고용, 경기를 조절하는 중요한 정책변수가 됩니다.
당시 횡행 우대금리 폐해 우려
朴대통령이 이해하기 쉽도록
줄넘기에 비유해 이자율 설명
그런데 이자율의 줄 높이를 하나로 하지 않고 낮은 줄과 높은 줄을 만들어 놓으면 수익성이 낮은 사업이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제치고 낮은 줄을 넘게 되어 전체적으로 보면 한 사회의 투자효율을 낮추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높이가 낮은 줄로 기업이 몰려오면 그들의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문지기가 있어야 하고 기업과 문지기가 접촉하는 가운데 부정과 부패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이자율은 시장에서 자금수급을 반영해 자율적으로 결정되도록 하고 이자율 구조도 가급적 단순화하는 것이 투자의 효율을 높이고 부정부패를 적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이 너무나 원론적인 교수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에 합리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대통령에게 이해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출지상주의 시대에 내 말이 먹힐 리는 만무했다. 수출을 위해, 정부가 원하는 투자를 위해, 중화학 공업 개발을 위해, 중동 진출을 위해, 국산 장려를 위해,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나 우대금리가 단골 메뉴 역할을 했다.
그래서 당시의 금리구조는 매우 복잡했고 그 폐단을 인식해 어느 정도 단순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변한 것은 1980년대 초에 가서나 볼 수 있었다. 그때까지 재무부는 금리 차를 적게 하고 적용범위를 확대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