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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환급’에 발목잡혀…‘세계2위 자유무역지대’ 숨고르기

입력 | 2009-04-03 03:02:00


23개월 마라톤협상

대부분 쟁점들 합의

양측 경제 ‘윈윈’ 감안

절충안 곧 마련할듯

■ 런던협상 막판 신경전 끝 최종 타결 못해

9분 능선을 넘어선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 선언’ 고지를 넘지 못하고 합의에 실패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맞춰 개최지인 영국 런던에서 협상타결을 선언해 글로벌 자유무역 확대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쥐려던 양측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그러나 한국과 EU의 협상 타결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게 통상 당국과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에 재정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미국에 맞서 “보호무역주의 움직임부터 배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EU로선 한국과의 FTA 협상 타결을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왜 협상 타결이 무산됐나

예상대로 관세 환급 문제가 걸림돌이 됐다. 관세 환급은 한국 정부가 중국 등지에서 원자재를 수입 가공해 수출하는 국내 기업에 원자재 수입관세를 돌려주는 제도. EU는 자국(自國) 기업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협상 초기부터 반대했다.

양측은 2007년 5월 1차 협상을 시작으로 8차례의 공식협상, 8차례의 통상장관회담, 13차례의 수석대표 협의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쟁점에 합의를 이뤘지만 관세 환급 문제만큼은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27개 회원국 안에서 원재료, 부품을 많이 조달하는 EU 측은 멕시코, 칠레 등과 FTA를 맺을 때도 관세 환급을 금지했던 전례를 들어 한국 측을 압박했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일(현지 시간) 통상장관회담 뒤 “우리는 관세 환급 제도가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이유를 설명했지만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협상 타결은 시간문제

양측이 관세 환급 문제의 타협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문제로 한-EU FTA가 좌초할 것으로 보는 통상전문가는 많지 않다. 한국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아 세계 최대 시장인 EU의 27개 회원국과 동시에 FTA를 맺어 ‘수출 영토’를 넓힐 필요가 있다. EU로서도 한국을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U가 한국 측 협상단이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인 ‘관세 환급 폐지’를 밀어붙이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속셈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윤성욱 동아대 교수(국제법무학)는 “한국이 관세 환급을 인정받는 대신 다른 분야에서 EU와 주고받기 식으로 절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EU FTA가 성사되면 2007년 국내총생산(GDP) 합계 기준으로 17조8760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 시장이 탄생한다. 2000년 7월 발효된 EU-멕시코 FTA(17조9290억 달러)에 이어 세계 2위의 자유무역지대다. 최근 멕시코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이 EU와의 FTA 효과를 극대화하면 세계 1위의 자유무역지대로 등극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FTA 협상을 타결한 한국이 EU와도 FTA를 맺는 데 성공하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세계 양대 경제권과 FTA로 연결되는 나라가 된다. ‘한국을 아시아 FTA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목표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미 FTA 비준의 지렛대 역할 중요

한국은 교착상태에 빠진 한미 FTA 비준동의를 자극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한-EU FTA 타결이 필요하다. 한미 FTA는 2007년 4월 타결됐지만 2년간 양국 의회로부터 비준 동의를 받지 못해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통상 전문가들은 “한-EU FTA를 성사시켜 한미 FTA 비준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FTA는 먼저 발효될수록 시장 선점 효과가 크기 때문에 한-EU FTA가 한미 FTA에 앞서 발효될 경우 한국 시장에서 EU 기업의 경쟁력이 미국 기업보다 높아지게 된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관세 환급이나 원산지 기준 등 미해결 쟁점은 이제 경제적 이슈라기보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국면으로 넘어갔다”며 “한국과 EU 모두 FTA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타결을 무작정 늦출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