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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장을 움직이는가]삼성전자 마케팅담당 이영희상무

입력 | 2009-04-04 02:55:00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사에서 만난 이영희 상무.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하자 그는 기자에게 양해를 구한 뒤 옷매무새와 화장을 고치고 돌아와 촬영에 응했다. 2월 스페인에서 열린 ‘MWC 2009’에서 삼성전자 부스 배경색과 같은 라임그린색 브로치를 달고 공식석상에 섰던 그의 섬세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박영대 기자


라임그린색 삼성 옴니아 로드쇼 ‘사고’칠때마다 히트

외국계 화장품회사서 자리옮겨

휴대전화 파격마케팅 잇단 도입

인생의 중요한 일 앞에선


다소 과격하게 결정하는 편이죠

세계적으로 불황의 파고(波高)가 높습니다.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한국 경제의 시름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추진력을 갖춘 경영진, 차별화된 마케팅을 구사할 전략가, 뛰어난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는 연구원 등 기업 전반에 걸친 ‘스타’들이 절실합니다. 독특한 아이디어나 성과 등으로 산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세계 최대 정보통신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09’의 개막 하루 전인 2월 1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신종균 부사장이 마련한 국내 기자간담회에 한 여성 임원이 나타났다. 오른쪽 가슴에 커다란 라임그린색(형광빛 초록색) 꽃 장식 브로치를 단 채였다. 이번 전시회에서 삼성의 옥외광고판을 과감히 없애고 푸른 피가 흐른다는 삼성 부스를 친환경 트렌드에 맞도록 라임그린색으로 도배해 버린 주역이었다. 그는 지난해 같은 전시회에서도 비슷한 ‘사고(?)’를 친 경력이 있다. 당시 전시회 주변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인 삼성전자 옥외광고판은 방문객들의 눈길은 물론 외신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세례마저 독식했다.

“삼성은 이성적인 회사, 믿음을 주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해 색깔도 점잖고 무난한 것만 선호했어요. 삼성과 삼성의 제품을 더욱 친근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좀 더 과감한 방법이 필요했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해외마케팅을 맡고 있는 이영희 상무(45)의 이야기다.

○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스타 마케터

그는 2007년 7월 삼성전자에 입사했을 때부터 유명했다. 외국계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코리아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가 휴대전화에 도전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파격’이라고 말했다. 전자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그의 결정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가 받아든 첫 번째 과제는 어려운 정보기술(IT) 용어에 대한 이해였다. 손에는 늘 한 묶음의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식사할 때도, 이동할 때도 무작정 외우고 또 외웠다. “마치 대학입시를 공부하는 고등학생 같았다”고 그는 회고한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옴니아’가 싱가포르에서 첫선을 보인 지난해 6월. 이 상무의 진가가 발휘됐다. 그는 제품을 들고 길거리로 나와 ‘로드쇼’를 펼쳤다. 새로 나온 화장품을 소비자들이 직접 써보게 하는 것처럼 누구나 옴니아를 만져보고 각종 기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휴대전화 마케팅은 TV 광고나 프로모션 행사 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을 깬 것이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옴니아는 시판 직후 4주 연속 매진 행렬을 벌였고 단숨에 싱가포르 시장 1위에 올랐다. 로드쇼는 이후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로드쇼는 올해도 삼성 마케팅의 주요 전술로 활용할 예정이다.

그는 “소위 ‘마케팅꾼’들은 수돗물이라도 팔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며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마케팅의 본질은 화장품이나 휴대전화 모두 똑같다는 믿음이 통했다”고 말했다.

○ 어떻게 ‘마케팅 달인’이 됐을까.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삼성전자 본사사옥 2층 회의실에서 만난 그에게 조심스럽게 개인사를 물었다. 공식석상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개인 인터뷰만은 극구 사양해 왔던 그다.

연세대 영문과를 ‘영문도 모르고’ 입학했다는 이 상무는 2학년 때부터 유학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자면 유학에도 특별한 목적의식은 없었다. 학원에서 현재의 남편(현 서울 D대 교수)을 만났고 졸업 직후 함께 미국 시카고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떠나기 전 이미 법적으로는 혼인 상태였다.

“제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다소 과격하게 하는 성향이 있어요.”(웃음)

남편이 박사학위과정을 밟는 동안 이 상무가 석사과정에서 전공한 과목이 ‘광고 마케팅’이었다. 이것이 발단이었다. 졸업 후 미국 한 광고대행사 인턴으로 일하다 3년여 만에 귀국한 그는 레오버넷이라는 광고대행사를 거쳐 1991년 한국에 진출한 유니레버에 합류했다. 이후 SC존슨, 로레알, 삼성전자에 이르기까지 18년을 마케팅에 ‘다걸기’했다. 특히 1990년대 말 약국에서 파는 화장품 브랜드인 비쉬(VICHY)를 만든 것은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비쉬는 이후 홍콩, 중국, 이탈리아 등 해외에서도 ‘빅히트’를 쳤다.

이 상무는 마케팅의 보편타당한 진리는 모든 업종에서 통할 수 있다는 점을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샴푸든 화장지든 TV든, 아니면 집같이 큰 것이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라도 상품의 가치를 판다는 것은 동일하죠. 이건 학교에서도 배우는 거예요.”

○ 삼성전자 휴대전화의 마케팅 포인트

삼성전자는 올해 휴대전화 제품 라인업을 6개의 큰 카테고리와 15개 세부 제품군으로 나눠 선보일 예정이다. 물론 마케팅도 제품군별로 세분화해 진행한다.

“휴대전화도 연령대별, 직업별, 소득별 요구가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옴니아 등 스마트폰은 전문가그룹이나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신제품 수용 속도가 빠른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을 겁니다.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보다는 고객 스스로가 삼성의 앰배서더(Ambassador)가 돼 입소문을 퍼뜨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그는 아무리 경기가 어렵더라도 소비자들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혁신적인 제품은 반드시 팔린다고 자신했다. 세분화된 소비자계층 중 몇몇은 끊임없이 성장할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이 상무는 올해 최대 전략품목으로 스마트폰, 터치폰, 메시징폰 등을 꼽았다.

1시간을 넘긴 인터뷰 막바지. 동료들과 효율적으로 일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 상무가 대답했다. “제 인생은 항상 균형 잡기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개인생활과 직장생활의 균형, 마음과 이성의 균형, 뭐 이런 것들 말이죠. 저는 참 현실적인 사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딴따라’ 기질도 갖고 있습니다. 기업 전체로 봐도 서로 다른 성향의 직원이 참 많아요. 잘되는 기업의 공통점은 그들이 조금씩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아닐까요.”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동아일보 박영대 기자

이영희 상무 프로필

―1987년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1989년 미 노스웨스턴대대학원 광고마케팅학과 졸업

―1990년 레오버넷코리아 광고담당

―1991∼1997년 유니레버코리아 마케팅 매니저

―1997∼1999년 SC존슨코리아 마케팅 디렉터

―1999∼2007년 로레알코리아 약국병원사업부 총괄이사, 시판사업부 전무

―2007년∼현재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커뮤니케이션즈(DMC) 부문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팀 상무